전남 강진 병영·작천면 일대 연방죽 5곳의 순환 생태수로 체계. 강진군청 제공
전남 강진 한들평야의 거미줄처럼 연결된 방죽·수로 체계가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재조명을 받고 있다.
강진군은 1일 “수자원이 부족할 때 서로 연결된 수로를 통해 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한들평야 연방죽 5곳과 순환 생태수로 3.4㎞가 국가중요농업유산 16호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등재된 연방죽은 강진군 병영·작천면의 하고·중고·요동·돌야·용동제 등이다. 이용주민, 몽리구역, 행정경계가 다른 방죽 5곳의 수로가 연결되어 상호 물을 공급할 수 있게 축조된 전국 유일의 사례다. 농업유산이 되면서 앞으로 3년 동안 예산 15억원을 들여 실태 조사, 수로 복원, 농로 정비 등이 추진된다.
이 일대는 전남의 들판 중 두 번째로 넓어 농경지가 2200㏊에 이르지만 큰 산과 하천이 부족해 만성적인 물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조건을 지녔다. 조상들은 이런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인근 수인산에서 흘러내린 계곡 물을 생활용수·농업용수·군사용수로 돌려쓰는 이중·삼중의 순환체계를 고안했다. 이런 체계는 방죽의 수위를 활용하고, 양수기를 인위적으로 가동하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 사용과 탄소 발생량을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이 일대에 순환수로체계가 축조된 역사는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 초기인 1417년 전라 병영성이 영산강 상류인 광주에서 군량미를 확보하기 쉬운 강진으로 옮겨졌다. 이설 과정에서 인근 수인산 하류에 보 수백개를 설치했고, 이곳에서 물을 끌어들여 성곽 주변 해자를 채웠다. 생활과 방어에 쓰인 용수는 가뭄 때 인근 들판으로 돌려져 벼농사를 짓는 데 활용됐다. 이런 기록은 네덜란드인 하멜의 표류기에도 남아 있다. 하멜은 “1656년 3월 강진 병영성에 도착한 뒤 마을에서 수로를 만들고 돌담을 쌓으며 살았다”고 기록했다.
군 농정팀 윤영준씨는 “연방죽 5곳의 저수량은 56만t이고, 평소 수면의 높이가 거의 같기 때문에 가뭄 때 수량과 수위를 조절하며 이리저리 물을 공급했다. 연류가 가득한 방죽은 수질을 정화할 뿐 아니라 생명체의 서식지, 공동체의 축제터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됐다”고 전했다.
방죽 인근 농민들은 매년 10월 벼 베기를 한 뒤 대나무나 갈대로 만든 원통형 바구니로 방죽의 붕어 잉어 토하 우렁 가물치 등을 잡는 가래치기를 펼쳐 축제처럼 한해 농사를 마무리했다.
이승옥 강진군수는 “전통 수도작의 전승, 부족한 수자원의 재순환, 생물종다양성의 보존, 공동체문화의 형성 등 여러 분야에서 가치를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며 “이를 세계관개시설유산으로 격상하기 위해 올해 안에 모로코에 본부를 둔 세계배수위원회에 등재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