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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에 수족관 갇힌 비봉이…22살에 고향바다의 자유를 만났다

등록 2022-08-04 20:28수정 2022-08-05 02:31

‘귀향 훈련’ 첫날…남방돌고래떼 출몰 부근 가두리로
“다른 개체들과 교감에 최적 장소”…한달뒤 바다 방류
4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신도포구에서 마지막 남은 ‘수족관 남방큰돌고래’ 비봉이를 적응 훈련을 위해 가두리 시설로 옮기고 있다. 허호준 기자
4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신도포구에서 마지막 남은 ‘수족관 남방큰돌고래’ 비봉이를 적응 훈련을 위해 가두리 시설로 옮기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 수족관에 남아 있던 마지막 남방큰돌고래가 17년 만에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왔다. 바다는 예전 그대로였다. 5~6살 때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 근처에서 전갱이 떼를 쫓으려다 인간이 쳐놓은 그물에 포획돼 좁은 공간에서 훈련받고 구경꾼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다 이제 22~23살이 됐다. 인간으로 치면 40대 중반이라고 했다.

4일 오전 11시30분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포구에서 포클레인이 대형 운반차에 실린 수조에서 들것을 이용해 남방큰돌고래 비봉이를 끌어올렸다. 비봉이를 포구에서 300여m 떨어진 가두리 시설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이날 제주 서부지역은 폭염 경보가 발효됐다. 방파제에 30분만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비봉이는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 바다가 좋았는지 고개를 연신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4일 바다 방류를 위해 가두리 시설로 옮기기 전의 남방큰돌고래 비봉이. 김병엽 교수 제공
4일 바다 방류를 위해 가두리 시설로 옮기기 전의 남방큰돌고래 비봉이. 김병엽 교수 제공

오전 11시30분. 비봉이가 운반선 만승호에 실려 가두리 시설로 향했다. 비봉이를 옮기기 전 전문가들이 냉각표시장치를 이용해 등지느러미에 숫자 ‘8’을 새겨넣었다. 남방큰돌고래 가운데 여덟번째로 방류되는 돌고래란 의미다. 지느러미엔 위치추적장치도 부착했다. 위치 정보와 이동 경로를 확인해 남방큰돌고래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2012년 국내에서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남방큰돌고래는 지정 당시 국내 수족관에 모두 8마리가 있었다. 대법원은 2013년 판결을 통해 2009~2010년 불법 포획된 복순이와 춘삼이, 태산이, 삼팔이를 퍼시픽랜드로부터 몰수했지만, 2005년 포획된 비봉이는 공소시효가 지나 몰수 대상에서 제외됐다. 제주에서는 2013년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를 시작으로 2015년엔 태산이와 복순이가 바다로 돌아갔고, 2017년에는 금등이와 대포가 고향으로 돌아갔다. 제주 섬 주위를 유영하는 남방큰돌고래는 120여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방류 작업에 참가한 김병엽 제주대 교수(돌고래연구팀)는 “비봉이의 건강 상태가 과거 방류했던 제돌이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이송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4일 남방큰돌고래 비봉이의 방류에 앞서 지느러미에 인식번호 ‘8’을 새겼다. 김병엽 교수 제공
4일 남방큰돌고래 비봉이의 방류에 앞서 지느러미에 인식번호 ‘8’을 새겼다. 김병엽 교수 제공

비봉이가 옮겨 간 가두리는 반지름 20m, 깊이 4m로 만들어졌다. 비봉이는 하루 30~50㎏의 생선을 먹이로 공급받으며 적응 훈련을 받게 된다. 해양수산부가 신도포구 앞바다에 가두리 시설을 설치한 것은 남방큰돌고래가 이 주변을 떼 지어 지나다니기 때문이다. 지난 2일에는 남방큰돌고래 100여마리가 무리 지어 나타났고, 3일에도 신도 앞바다에서 유영하는 돌고래 떼가 목격됐다. 김 교수는 “과거 제돌이를 방류할 때는 항내 포구에서 1차 적응 기간을 거친 뒤 2차 가두리 시설로 옮겼지만, 이번에는 비봉이 혼자여서 1단계를 생략했다. 한달 정도 무리 없이 적응 기간을 거치면 바다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4일 마지막 ‘수족관 남방큰돌고래’ 비봉이를 실은 어선이 적응 훈련을 위한 가두리 시설로 향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4일 마지막 ‘수족관 남방큰돌고래’ 비봉이를 실은 어선이 적응 훈련을 위한 가두리 시설로 향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해양생물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의 조약골 대표는“2011년 돌고래 방류를 촉구하는 손팻말 시위 이후 동물권 보호에 대한 국민 의식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동물권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자체를 남방큰돌고래가 역설적으로 바꿔놓은 게 됐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며칠 전에도 제돌이를 봤다. 돌고래 관광 선박으로 인해 돌고래들의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어 보호구역 설정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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