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노로오름 일대에서 발견된 4·3 당시 탄피와 수저, 그릇 파편들. 마중물 제공
제주4·3 시기 제주시 애월읍 노로오름(해발 1068m) 일대는 무장대와 군경토벌대의 몇 안 되는 격전지였다. 토벌대에 쫓긴 중산간 지역 주민들의 피신처이기도 했다.
‘4·3 통일의 길, 마중물’(이하 마중물·대표 강동수)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13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로오름 일대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들은 2017년 10월부터 지난 10월까지 5년 동안 노로오름 일대 50차례를 포함해 모두 171차례 현장조사를 벌였다.
4·3 시기 격전지로 한라산 곶자왈 지역에 있는 노로오름은 사람 발길이 뜸한 곳이다. 이 일대와 주변 돌오름 일대는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5월께부터 해방될 때까지 이른바 ‘에이코(영광)부대’라는 일본군 제121사단이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날 이들이 공개한 사진들을 보면, 일본군 주둔 흔적을 보여주는 일본 군마의 편자와 에이코부대가 선명하게 찍힌 인식표가 발견됐다. 또 노로오름 일대 곳곳에서 4·3 당시 주민들이 살았던 집터와 생활용품, 농기구 등을 비롯해 탄피 등이 발견됐다. 특히 오름 분화구(일명 장태코)에서는 집단 집터 흔적과 엠(M)1 소총 대검 집과 탄피, 놋숟가락, 항아리 조각 등이 발견됐다. 오름 일대에 널려 있는 작은 궤(굴)에서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나 탄피 등이 발견됐다. 오름 주변 하천 바닥에서도 다량의 탄피가 발견됐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지역이어서 보초 터들도 70여년 세월 동안 이끼가 낀 채로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도 보였다.
마중물은 1948년 5월 촬영한 미군의 제주도 항공사진과 일제 강점기 제주도 지도를 토대로 금속탐지기와 탐침봉까지 활용해 조사를 벌였다.
13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주 중산간 일대 4·3 유적지를 조사해온 배기철 마중물 회원이 노로오름 일대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마중물은 “다양한 현장과 유물들은 사회, 역사, 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이번 조사를 통해 한라산 중턱에는 많은 유적과 유물이 묻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속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