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독도에서 물질한 제주해녀가 강치를 안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제주해녀들의 세상은 넓었다. 일제 강점기 해녀들은 한반도는 물론 일본 열도, 중국 다롄과 칭다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등 동북아 일대에서 바닷속에 뛰어들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 동쪽 끝 독도도 있다.
25일 제주해녀박물관과 해녀들의 말을 들어보면, 해녀들의 독도 물질은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계속됐다. 해녀들에게 독도의 바닷속은 제주 바다에 있는 미역과 천초, 전복, 소라 등이 있어 낯설지 않았다.
독도 물질은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해녀 등 제주 서부지역 해녀들이 먼저 시작해 동부지역인 구좌읍 해녀들도 갔고, 서귀포시 보목 해녀들도 나섰다. 협재리 마을회관에는 1956년 세운 ‘울릉도 출어 부인 기념비’가 있다.
제주해녀박물관은 올해 독도 출향해녀에 대한 조사를 한다고 이날 밝혔다. 제주-경북 해양교류 협력사업의 하나로 일제 강점기부터 울릉도 및 독도에 물질을 나간 제주해녀들의 역사를 알리는 특별전시회를 열고, 독도와 관련한 제주해녀들의 자료를 찾을 계획이다.
19살 때인 1958년 독도에서 물질을 한 김씨는 과거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협재리 등 서부지역 해녀 35명과 함께 갔다. 울릉도에서 저녁에 발동선을 타서 다음날 아침에 독도에 도착해 서도의 물골에 가마니를 깔고 자며 물질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 뒤 10년 동안 울릉도와 독도에 물질하러 다녀왔다. 또 다른 해녀는 “미역이 잘 자라 호미로 베어낸 뒤 어깨에 걸치고 나올 정도였다”고 했다. 1960년대 중반 한 신문은 “제주해녀들이 독도에 미역철이 오면 해마다 철새처럼 떼 지어 모여든다”며 “동도와 서도에 모여든 해녀는 모두 18명”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독도에 물질을 다녀온 제주해녀들은 독도하면 미역과 갈매기, 강치가 떠오른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8월에는 오영훈 제주지사가 1950~1960년대 독도에서 물질했던 한림읍 협재리 김공자 해녀 등 해녀 4명과 함께 독도를 방문했다. 오 지사는 “제주해녀들이 독도까지 와서 물질을 했다. 제주해녀의 독도 물질 기록을 꼼꼼하게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해녀박물관 관계자는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독도에서 물질을 하기 시작했고, 제주도 출신 해녀 7명이 울릉도에 살고 있다”며 “울릉도와 독도에서의 물질 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특별전시회 등을 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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