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최고위원 후보인 태영호 의원이 13일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추모비에 참배하고 있다. 태 의원은 '제주 4·3 사건'에 대해 "명백히 북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사흘째 제주4·3의 북한 지령설을 주장하고 있다. 제주지역에서는 역사 왜곡을 처벌할 수 있도록 4·3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태 의원은 15일 오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북 공산당은 중앙당 유일관리제이고, 지역당의 자의적 결정도 처벌받는다”며 “김일성은 남·북 총선거와 5·10 단독선거 반대를 당 결정으로 채택하고 평양 라디오방송은 매일 거국적인 투쟁에 나서라고 선동했다. 따라서 남로당의 중앙의 직접적인 지시가 없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밝혔다. 4·3은 중앙당의 지배를 받는 남로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태 의원은 지난 13일 제주에서 열린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제주 합동연설회’ 때도 ‘4·3 망언’을 쏟아냈다. 그는 당시 ‘제주4·3사건, 명백히 북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어 “김씨 일가에 의해 자행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제주지역 정치권과 4·3 관련 단체 등과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들 잇따라 성명을 내어 “태 의원이 철 지난 색깔론을 꺼내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며 최고위원 후보 사퇴를 주장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태 의원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지난 14일에도 “제주4·3사건, 김일성 지시설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라며 논란을 증폭시켰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원내수석부대표가 15일 오전 국회 의안과에 국회의원 태영호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송재호·위성곤·김한규 의원. 연합뉴스
정부가 2003년 10월 확정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이 보고서는 “4‧3사건은 제주도의 특수한 여건과 3‧1절 발포사건 이후 비롯된 경찰 및 서청과 제주도민과의 갈등, 그로 인해 빚어진 긴장상황을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과 접목시켜 일으킨 사건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남로당 제주도당의 독자적인 사건으로 규정했다.
정부 보고서 발간 이후 연구자들에 의해 발굴된 자료에도 4·3이 북한이나 남로당 중앙당과 관련됐다는 자료는 없다. 최근 연구자들은 4·3의 발발 원인으로 당시 미군정 경찰의 횡포와 이북에서 넘어온 청년들로 구성된 서북청년회의 제주도민들에 대한 만행을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태 의원이 계속해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4·3의 북한 지령설을 이어나가자 제주지역에서는 4·3 역사 왜곡 처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4·3 연구자들은 “지난 2021년 4·3특별법을 전면 개정할 때에도 진실을 왜곡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되는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며 “5·18 역사 왜곡을 처벌할 수 있는 5·18특별법처럼 4·3특별법에도 이런 조항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은 정부가 정의를 내리고, 여야 합의로 국회가 인정한 4·3의 진실을 부정하는 태 의원을 제명하고 제주도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당 대표에 출마한 김기현·안철수 두 후보는 태 의원 발언에 동의하는 것인지 명확히 답변해달라”고 요구했다. 오 지사는 “4·3특별법 개정을 통해 역사 왜곡을 막을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제주에 지역구를 둔 위성곤·송재호·김한규(민주당) 의원은 이날 공동입장문을 내고 “태 의원이 제주도민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4·3 희생자와 국민 모두를 모독하고 있다”며 국회 윤리위원회에 태 의원 징계안을 제출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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