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 피란민 주거지(빨간석 안). 부산시는 이곳을 첫 번째 등록문화재로 등록했다. 부산시 제공
1876년 우리나라 첫 번째 무역항으로 개항한 뒤 부산에 몰려든 일본인은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무덤을 서구 아미동 뒷산으로 옮겼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이곳에 공동묘지와 화장장을 만들었다. 일본인들은 이곳에서 주검을 화장한 뒤 제물을 올렸는데, 이를 보고 까치떼가 몰려 ‘까치고개’라는 이름도 붙었다.
1945년 8월 광복 뒤 이곳 일본인 묘지는 방치됐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란민들은 버려진 공동묘지인 이곳에 모여들었다. 피란민들은 일본인 무덤 위에 판자를 덧대고 이어 집을 지었다. 무덤에 딸린 비석과 상석은 집을 구성하는 자재로 이용됐다. 무덤 위에 터를 닦고 비석 등으로 만든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사람들은 ‘비석마을’이라고 불렀다. 공동묘지 위에 세워진 이 마을은 부산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꼽혔다.
비석마을은 서구 아미동 산 22번지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무덤 비석 등으로 만든 집은 현재 9채가 남아 있다. ‘메이지’ ‘다이쇼’ ‘쇼와’ 등 일본식 연호가 새겨진 비석과 돌덩어리들을 집 계단이나 굄돌, 축대 등에서 볼 수 있다.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중 하나인 비석마을은 산 자의 집과 죽은 자의 묘지가 함께 있는 역사적 공간이며,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 생활과 주거 모습을 잘 보존된 공간으로 부산 지역사에서 역사적·건축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부산 서구는 지난해 6월 비석마을 들머리에 있는 집 9채를 피란민과 산업화 시대 서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구멍가게, 이발소, 봉제 공간 등으로 고쳐 전시공간(피란 생활 박물관)을 만들었다. 부산시는 최근 비석마을을 첫 번째 시 등록문화재로 등재했다.
비석마을 일대에는 ‘역사보존형’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된다. 비석마을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면서 주거지 경관을 보호하고 주민들이 살기에 보다 나은 환경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마을이 정비되는 것이다. 이주영 서구 아미동장은 “전쟁 속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살아야 했던 아픈 사연이 많은 마을이다. 동네 주민과 전문가 등과 함께 논의해 마을의 역사적 가치를 지키며 가꾸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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