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11시인데도 경주시 황성동 축구공원의 기온은 31도를 가리켰다. 지열과 경기로 인해 선수들의 체감온도는 40도를 훌쩍 넘는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나는데 이 불볕더위에 12일 동안 축구시합을 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참가비에 경주에서 먹고 자려면 한 집당 경비가 100만원도 넘게 드는데 솔직히 경주시 좋으라고 애들과 학부모들 고생시키는 거 아닌가요?”
지난 8일 개막한 ‘2019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축구대회’(화랑대기 유소년축구대회)가 불볕더위 속에서 열흘 넘게 열리는 데 따른 학부모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연일 폭염경보가 발령된 경북에서도 기온이 높은 편인 경주에서 경기가 치러져 온열 사고 등 아이들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다.
주말인 지난 10일, 오전부터 경주축구공원은 불볕이었다. 사고 예방을 위해 오전과 저녁에 경기가 치러졌지만 이날 오전 수은주는 31도를 넘었고, 운동장 지열 위에서 유소년 선수들이 체감하는 온도는 40도를 훌쩍 넘었다. 이 주말에 경기를 치른 선수들 가운데 어지럼증과 두통을 호소해 지정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온 아이들도 있었다. 행사를 주최하는 경주시 관계자는 “폭염 속 진행되는 대회의 안전을 위해 의료진 400여명을 투입하고 안개 선풍기와 대형 선풍기 설치, 경기 중간의 휴식시간 등을 마련했다. 온열환자는 신고된 바 없다”고 했다.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축구대회는 가장 큰 규모의 대회로 알려져 있지만, 대한축구협회 경기규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등 경기 운영에서도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
전국 122개 초등학교와 133개 클럽 등 총 762개 팀에서 1만여 선수들이 참가한 가장 큰 대회라는 명성에 무색하게 경기 운영에서도 미흡했다. 경기중 선수들을 구두로 지도할 수 없도록 한 대한축구협회 새 경기규정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선수들에게 고함 또는 욕설 등으로 경기에 개입하는데도 경기장의 감독관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심지어 11일 저녁 치뤄진 경기에선 충북 청주의 한 클럽 감독이 욕설 끝에 물병으로 선수를 때리려는 장면이 포착돼 관람석의 학부모들이 경악하는 일도 벌어졌다. 또한 몇몇 예선전에선 심판이 1명으로 경기가 치뤄져 업사이드나 핸드링 등 반칙을 제때 잡아내지 못했다. 한국유소년축구연맹 관계자는 “교육부 정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방학에 경기를 치르고 있다”며 “현장 감독관은 대한축구협회에서 파견나온 분들이라 저희 연맹에서 이래라저래라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저학년 선수들의 경기에 1심제가 이뤄졌는데 중요경기의 경우 모두 2심제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불볕 더위에 12일 동안이나 경기가 이어지면서 학부모들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몇몇 경기장은 관람석이이 부족해 학부모들은 나무그늘 밑에서 비지땀을 흘려가며 관람하기도 했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한 학무보는 “열흘 이상 경기가 이어지니까 직장에 휴가를 낼 수밖에 없다. 하루에 한 경기 밖에 없는데 이 더위에 이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화랑대기의 화는 더워서 화(火) 열받아서 화(火)”라고 꼬집었다. 서울의 한 축구클럽 학부모는 “숙박비와 식비 등 회비를 한 집당 80만원 걷어서 왔는데 추가로 더 걷어야 할 것 같다. 축구선수로 키우려는 학부모 입장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올 수밖에 없다”며 “학생들 참가 늘리려고 이 더위에 하는 게 아니겠냐. 결국 경주 지역경제를 위해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볼모로 이용당하는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매년 경주시에서 열리는 이 대회로 연인원 50만명이 방문하고, 경제 효과도 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글·사진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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