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정아은의 책들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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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지음/요다(2020) 밀린 일 때문에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거릴 때가 있다. 그날 해치워야 할 일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천 근 돌덩이가 얹힌 듯 마음이 무겁다. 그럴 때면 베란다로 나간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식물들을 보살핀다. 물을 주고, 시든 잎을 따주고, 분갈이를 해준다. 찰랑거리는 악기 소리를 들으며 작은 생명체들을 어루만지다보면 일에 대한 부담감,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불안감이 잦아든다. 묵직한 감정들이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더라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무게가 줄어 다시 일상에 뛰어들 수 있게 된다. 그러니 화분이 다닥다닥 붙은 손바닥만 한 베란다는 내게 일종의 성소다. 누구에게나 이런 시공간이 있을 것이다. 현실이 주는 중압감에 짓눌린 영혼을 펴서 말리고 다림질하는 공간, 육신과 영혼을 재생산해 다시 제 생에 성의 있게 임하도록 해주는 시공간이. 그런 여유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사소하지만 특별한 습관에서 생겨나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타인으로부터 오기도 한다. 김동식의 단편 ‘운수 없는 날’은 후자의 경우를 그리는 소설이다. 한 ‘사내’는 아침부터 사소한 ‘재수 없는 일’들에 휘말리다가, 급기야 배우자가 큰 수술을 받게 됐다는 연락을 받기에 이른다. 사정을 알 길 없는 타인들, 사내에게 자잘한 불행을 안겼거나 사내로 인해 사소한 불행을 안게 되었던 타인들은 계속 사내에게 연락을 해오고, 배우자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안절부절못하던 사내는 그런 전화들에 신경질적으로 대응한다. 반전은 사내에게 불행을 안겼던 인물들 중 한 명이 사내에게 의외의 반응을 보이면서 시작된다. 수화기 너머로 날아오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사내는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상황이 바뀐다. 사내가 제게 날아온 뜻밖의 기류를 제 것으로 만든 뒤 자신이 작은 불행을 선사했던 다른 이에게 그 기류를 흘려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기류를 받아든 상대도 사내와 똑같이, 처음에는 주춤하다가, 결국 사내가 내보내는 폭발적인 기류에 휩쓸린다. 인간은 생사와 관련된 불행을 제 힘으로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커다란 불행이 닥쳐오기 전과 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며, 살아 있는 한 그 불행과 별개인 수많은 일과 그에 따른 감정에 휘말리게 된다. 이 때, 큰 불행을 맞은 개인이 접하는 타인의 예상치 못한 선의는 커다란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선의는 불행에 발을 담근 사람이 제 마음의 물꼬를 돌리고, 그렇게 바뀐 마음으로 다른 이의 마음의 방향을 돌려놓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만든다. ‘운수 없는 날’은 이러한 마음의 도미노 현상을 그려낸 짧고 강렬한 단편이다. 소설집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에 실린 작품들 중 가장 현실적이고 핍진한 이 이야기는 풍부한 상상력에 기반한 나머지 작품들과 다른 빛깔로 반짝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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