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은 자산에서 시작되었다: 자산의 격차는 어떻게 개인의 삶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 되었는가
리사 앳킨스·멀린다 쿠퍼·마르티즌 코닝스 지음, 김현정 옮김/사이·1만4500원
코로나19 대유행도 부동산 광풍을 막지 못했다. 아니,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푼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일찌감치 또는 뒤늦게나마 주택 매수 행렬에 뛰어든 사람들과 한발 떨어져 있던 사람들 사이에는 깊은 골이 패였다. 무섭게 오른 집값은 앞으로 착실히 월급을 모은다고 이 골을 메꿀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같은 직장을 다녀도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생겼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평생 집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다른 한편엔 부모 지원을 받아 집을 척 사들이는 동년배들이 존재한다.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본 잠실의 아파트.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 모든 것은 자산에서 시작되었다>는 이런 풍경이 한국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회학·정치경제학 학자인 지은이들은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중심으로 자산 가격 상승이 어떻게 삶의 양태를 변화시키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는지 분석한다.
멀리는 1980년대 이래, 가깝게는 지난 10년간 서구의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주택 임차료가 높아졌다. 반면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근로소득이 정체되면서,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보다 임대료 등 자산을 통해 얻는 소득의 중요성이 커졌다. 자산을 보유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이제 임금 그 자체만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모습에 걸맞은 삶의 방식을 갖추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지은이들은 “‘자산의 소유 여부’가 새로운 계급 지위를 결정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자산 경제 시대’라고 이름 붙인다. 개인의 삶은 자산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자산 중심 생애’가 된다. 자산 중에서도 주택이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불평등을 초래하는 핵심 요인으로 지적된다.
자산 경제 시대 이전에는 인생은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갔다. 교육을 마치고 직장을 다니면서 주택담보대출을 갚고, 대출 상환이 끝날 때쯤 은퇴를 했다. 자산 경제 시대에는 이런 인생의 주요 단계가 전반적으로 ‘지연’되거나 끝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집값은 오르고 임금은 불안정한 탓에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다. 집을 떠났다가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는 ‘부메랑’ 현상도 나타난다. 주택 소유율은 하락하고 주택을 처음 구입하는 연령은 올라가고 있다. 이런 지연은 청년 세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은퇴 때까지 대출을 다 갚지 못해 더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당면한 냉엄한 현실은 대출을 상환해야 하고, 임금은 정체되고, 인적 자본의 가치는 하락하는 상황에서 파산만은 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서 급여 수준이 같은 사람들 안에서도 집을 가진 사람과 임차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확연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같은 부류의 일을 한다는 이유로 같은 계급으로 분류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이들이 각기 다른 사회 계급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까지 계급 구분은 노동자, 중산층, 상류층 등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소득을 기준으로 하거나,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핑크칼라 등 직업적인 지위를 근거로 이뤄졌다. 지은이들은 자산 소유 여부를 기준으로 새로운 계급 구분을 제시한다. ①투자자(자산을 통해 생긴 소득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②주택담보대출이 없는 주택 소유주 ③주택담보대출이 있는 주택 소유주 ④임차인 ⑤홈리스(노숙자) 등으로, 점점 가격이 상승하는 ‘자산 역학’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눈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런 현실, 즉 임금 노동만으로 부를 축적하고 중산층의 삶을 누릴 수 없게 된 현실을 본격적으로 경험하는 첫번째 세대다. 하지만 이것이 밀레니얼 세대나 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동질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모로부터 부동산이나 현금을 물려받을 수 있는 밀레니얼 세대는, 집을 임차해 살아가는 베이비붐 세대나 부모의 부에 접근할 수 없는 밀레니얼 세대보다 훨씬 유리한 삶을 살아간다. 특히 젊은 층이 집을 사기 위해 점점 부모에게 의존하게 되면서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부의 이전이 이뤄지는 경우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제공한 재정적 도움의 총합을 고려해보면 오스트레일리아의 ‘엄마 아빠 은행’의 규모가 중간 규모 정도의 주택 대출 기관과 맞먹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가족’이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하는 핵심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또한 이런 대물림은 계급 지위를 재생산하는 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면서 계층 이동성을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
지은이들은 자산 경제 시대가 도래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에는 1980년대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이전까지는 ‘높은 임금 상승률+자산 가격 하락’이라는 조합이 지배적이었다면, 신자유주의 이후에는 ‘임금 정체+자산 인플레이션’의 조합이 부상했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자본이득에 대한 세금을 낮추고, 부채를 통한 주택 매입을 장려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결국은 “사회적 이동이 정지되고 임차인에서 주택 소유주로 넘어가는 사다리가 끊긴 폐쇄적인 ‘이동 불가 시대’”가 되었다.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법은 있을까? 지은이들은 ‘손쉬운 탈출구’는 없다며 특별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또다시 자산 인플레이션이 찾아오고 주택 소유가 평범한 사람들이 그 논리에 동참할 수 있는 유일하지만 현실성은 점점 떨어지는 수단이 되어버리면, 지난 10년의 세월을 정의하는 중요한 특징인 사회적 및 정치적 양극화가 향후 10년은 더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안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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