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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분단된 땅에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

등록 2021-07-16 09:30수정 2021-07-16 11:20

영국 거주 탈북여성 회고, 남한 출신 여성이 저술
한국말로 확인한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고통

가려진 세계를 넘어: 우리는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박지현 이야기, 채세린 글, 장상미 옮김/슬로비·1만6000원

<가려진 세계를 넘어>를 보고, <두 개의 한국>이 떠올랐다. 6·25 참전용사로 한반도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존스홉킨스대 한미관계연구소장을 지낸 돈 오버도퍼와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대북 협상 수석 고문으로 일하고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에서 연구한 로버트 칼린이 함께 지은 이 책의 원제는 〈The Two Koreas〉(1997)이다. 한반도 현대사를 다룬 이 책은 남북 어느 한쪽을 악마화하지 않고 균형잡힌 시각을 견지한 역작으로 꼽힌다. 이 책이 떠오른 까닭은 <가려진 세계를 넘어>의 원제가 〈Deux Coréennes〉(두 한국 여자)여서다.
2019년 4월 영국 런던 옥스브리지 클럽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장면. 슬로비 제공
2019년 4월 영국 런던 옥스브리지 클럽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장면. 슬로비 제공

두 개의 코리아가 남북을 가리키듯, 남북한에서 태어난 두 한국 여성이 <가려진 세계를 넘어>를 지었다. 글쓴이는 남한에서 태어나 주로 국외에서 자라났으며,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고 자란 북한을 떠나왔다. <두 개의 한국>이 굵직한 정치사를 세밀화로 다뤘다면, <가려진 세계를 넘어>는 북한에서의 평범한 삶과 탈북 과정을 한쪽에 기울지 않은 시각으로 담아낸 미시사다. 한국어로 인터뷰하고 프랑스어로 저술된 뒤 한국어로 다시 번역된, 기나긴 과정은 남북한의 굴곡진 역사를 상징하는 듯도 여겨진다.

1968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박지현씨의 유년은 당시 남한에서 자라난 또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먹을 것이 부족해 배고팠지만 가족은 화목했다. 단짝 혜림이와 숨바꼭질, 줄뛰기를 하면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고 “아담한 체구에 검은 정장이 잘 어울리는 (…) 선생님이 참 좋았다.” “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길 좋아했”고 “역사 시간이 제일 좋았”다. 아버지가 “1959년 강원도 군 생활이 끝날 무렵 (…) 남조선 간첩을 잡았”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고, 전쟁 때 월남한 “외할아버지의 변절로 집안의 지위가 더럽혀지고 말았”다며 수치스러워 한 평범한 북한 아이였다.

박씨는 ‘고난의 행군’ 때 탈북했다. 공산권 붕괴 이후 발생한 북한 지역 대기근은 공식적으로 1994년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1991년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책은 전한다. 1993년 배급이 완전히 끊겼고 1994년 7월 김일성이 죽었다. 사람들이 길거리에 쓰러져 죽기 시작했다. 삼촌이 굶어죽는 모습을 본 박씨는 1998년 탈북했으나 중국 남성에게 팔려갔고, 그렇게 낳은 아들 철이가 다섯살 되던 해에 중국 공안에 잡혀 북송된다. 2004년 다시 인신매매를 자청해 중국으로 탈출한 뒤 2005년 철이를 찾고 2008년 난민 지위를 얻어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한다.

글을 쓴 채세린씨는 박씨를 처음 마주할 때 두려웠다. “늘 적이라고 배워온 북한 사람”은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 같”았지만 “내게 ‘더러운 남조선 미제 앞잡이’라고 하면 어쩌지? 거꾸로 내 쪽에서 뭔가 무례한 말을 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알게 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우리가 겪은 어린 시절의 행복, 고통, 죽음은 다를 바 없었다. (…) 만약 우리나라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우리 중 누가 지현이고 누가 나일까? 지현의 이야기는 어쩌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책은 “한반도 이야기인 동시에 서로 마음을 연 이야기이다.” 갈라진 이 땅을 넘어서려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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