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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전력인프라를 재발명하라

등록 2021-07-23 08:59수정 2021-07-23 10:06

[한겨레B] 이권우의 인문산책

그리드: 기후 위기 시대, 제2의 전기 인프라 혁명이 온다
그레천 바크 지음, 김선교·전현우·최준영 옮김/동아시아(2021)

이렇게 흥미로울 수 있단 말인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 제쳤다. 흡인력 강한 소설에 비견한다면 과장이겠지만, 빼어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느끼는 지적 포만감을 누렸다. 처음에는 겁을 먹었다. 당최 모르는 얘기가 튀어나오면 어쩔까 싶었다. 기우였다. 복잡한 역사를 요령껏 정리해주고, 원리를 잘 설명해주었다. 지루해질 법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지은이의 세련된 수사는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아무리 호사가라 해도 그 촉수에 도저히 걸리지 않을, 미국 전력망의 역사와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다룬 <그리드>를 읽고 난 소감이다.

문외한이지만, 전기는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점, “오늘날의 성배”는 전기 저장 기술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선에 너무 많은 전력이 걸리면, 과부하가 걸려 회로가 차단된다는 점은 미처 몰랐다. 블랙아웃(대정전) 하면 큰 소동이 난다는 생각만 했지, 그 자체가 더 큰 사고를 막는 방법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미국에 국한해서 볼 적에 “걷잡을 수도, 관리할 수도, 저장할 수도” 없는 과잉전기가 발생한 이유는 빠른 속도로 성장한 재생에너지 때문이다. 이 에너지가 “지난 한 세기 동안 유지되었던 절묘한 균형이 깨질 만큼 강력한 충격”을 그리드에 주고 있다. 이제, 이 책의 주제가 또렷해진다. 그리드의 전면적인 개편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전력 인프라의 회복력을 다룬 대목을 가장 주목해서 보았다. 허리케인 샌디와 해안 대폭풍으로 블랙아웃을 겪고 나서 미국 해안지역은 회복력을 가장 중요하게 내세웠다. 극한상황이 발생했을 때 시스템이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고, 복구나 재구성을 신속하게 해내는 능력을 이른다. 회복력을 강화하려면 그리드를 “더 작고, 더 유연하며, 더 많은 것을 자급자족하고, 오염이 더 적으며, 집에서 더 가까이 있는 형태로 재구성”해야 한다. “분산된 에너지원과 여러 전력부하 및 수용가를 에너지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네트워크”라는 뜻의 마이크로 그리드가 확산된 것도 같은 이유다. 샌디가 휩쓸고 지나갔을 적에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캠퍼스와 사우스오크스병원이 피해를 받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마이크로 그리드를 보유한 덕이었다. 이제, 그리드는 하나의 거대한 심장을 원하지 않는다. 햇빛과 바람을 연료 삼아 뛰는 작고 흩어진 수많은 심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면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전기 저장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알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기왕에 활발히 논의된 수소와 함께 양수발전을 대안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언론에 종종 가상발전소라는 말이 나오는데, 지은이도 “분산된 전력자원을 한데 연결해 활용하는” 플랫폼의 가능성을 높이 치고 있다. 재생 에너지 하면 블랙아웃의 공포를 내세우는 사람이 많지만, 이를 막을 현실적인 대안은 제시된 셈이다.

기후위기는 모든 에너지의 전기화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전기는 재생에너지로 생산되어야 한다. 기존의 그리드는 철저하게 화력과 핵발전에 맞춰 편성되어 있다. 이에 재생에너지의 가변성과 분산성이라는 특징에 걸맞게 그리드 시스템을 재발명해야 한다. 자칫 늦으면, “전기의 바다에서 살아”가는 꼴이 된다. 아무리 넘쳐나도 마실 수 없는 게 바닷물이다. 우리도 서두르자, 모두의 미래가 달린 일이잖은가.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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