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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AI가 쓴 소설, 읽을 준비 되셨나요?

등록 2021-08-06 04:59수정 2021-08-06 09:41

인공지능 작가 다룬 ‘AI가 쓴 소설’
100개의 소설을 동시에 써내는 AI가 등장했다?!

AI가 쓴 소설
박금산 지음 l 아시아 l 1만3000원

“지금은 작가들이 만들어 배포하는 서사를 중심으로 독자들이 움직이지만 AI가 정비되면 독자들은 자급자족할 겁니다. 서사의 자급자족 시대가 펼쳐지는 거죠. 셀프 독자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셀프 독자들은 진정으로 원하는 소설을 자기가 만들어서 자기가 읽습니다. 타인인 작가에게 강요당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글을 읽게 될 거예요.”

박금산의 소설 <AI가 쓴 소설>에서 출판사 대표는 주인공인 작가 시(C)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공지능 에이아이(AI, Artificial Intelligence)가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독자들은 자신이 읽고 싶은 소설을 에이아이로 하여금 쓰게 하는 세상이 온다는 전망이다. 국내외 공모전에 에이아이가 쓴 글이 출품되어 심사를 받았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상황에서 출판사 대표의 이런 예측이 아주 허황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문제는, 소설 쓰는 에이아이의 등장이 언제일지 그리고 그럴 경우 ‘인간’ 작가의 차별성과 경쟁력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지 등이 될 것이다.

<AI가 쓴 소설>은 옥탑방에 사는 가난한 전업 작가에게 출판사 대표가 기묘한 업무 계약을 제안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출판사 대표의 제안인즉, 작가가 매일 출판사에 출근해서 소설 원고를 읽고 대표 자신에게 그에 관한 소감을 들려 달라는 것. 3개월치 봉급을 선불로 지급하고, 그 뒤로는 3개월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큰 고민 없이 대표의 제안에 응하고, 계약서를 작성한 뒤 출근을 시작한다.

소설 쓰는 인공지능을 설정한 신작 장편 &lt;ai가 쓴="" 소설=""&gt;의 작가 박금산. “나는 AI 작가를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소설을 읽는 AI 독자를 생각한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박금산 제공&lt;/ai가&gt;
소설 쓰는 인공지능을 설정한 신작 장편 <ai가 쓴="" 소설="">의 작가 박금산. “나는 AI 작가를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소설을 읽는 AI 독자를 생각한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박금산 제공</ai가>

출근해서 작가가 하는 일은 실제로 소설 원고를 읽는 것이다.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대표 집무실과 붙어 있는 독방에 책상과 의자 다섯, 모니터와 마우스가 있고 인터넷은 차단되어 있으며 메모도 금지된다. 누가 쓴 것인지 알 수 없는 원고를 읽고, 읽기가 끝나면 대표와 만나 원고에 대한 느낌을 말한다. 대표에게 들려주는 독후감은 녹음이 된다. 원고 내용과 작업 방식 등은 대외비.

초기에 그가 읽는 원고들은 들쭉날쭉, 천방지축에 가깝다. 외계인과 지구인이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야구 선수가 나오기도 하고, 보르헤스가 쓴 장편소설인 듯 관념과 요설로 일관하는 글도 있다. 이 작품들을 두고 작가가 대표와 나누는 대화는 소설 창작반 합평회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문학 작품이 주는 쾌감은 금기를 위반하는 데에서 비롯되지만 금기의 위반에는 수긍할 만한 까닭이 있어야 한다, 묻지 마 살인 식의 피비린내는 곤란하다, 주인공들의 성별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사랑의 형태가 참신하게 다가온다”, “남성형 정의감에 의한 도식”의 느낌이 든다… 등등.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작가가 ‘그런데 나는 어떤 소설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모습은 자연스럽다.

소설 중반부에서부터는 야구 선수를 다룬 소설과 그 변형들로 대상이 좁혀진다. 글의 수준도 한결 높아진다. 타자 헬멧에 컴퓨터가 장착되어 있어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미리 알게 되는 상황이 핵심적인 설정이다. 이로부터, 그 헬멧을 훔친 동료 선수의 이야기라든가, 투수 역시 타자와 비슷한 컴퓨터를 이용하게 된다든가, 아예 관객들까지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청원이 등장한다든가… “모두 같은 기원에서 시작한 다른 소설”들. 놀라운 것은 그렇게 변형된 소설들에는 작가가 대표와 나눈 강평의 내용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 게다가 그런 대화를 나눈 지 불과 30분 만에 강평 내용을 반영해 수정한 원고가 완성돼 나온다는 사실이다. 급기야 어느 날은 100개의 소설 파일이 읽기 과제물로 뜨는데 그것들은 “모두 같은 문장으로 시작해서 다른 이야기로 번져가는 베리에이션(변형)”이었다. 그때까지 반신반의하던 에이아이의 존재를 확신하는 순간이다.

“AI를 만났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 백 개의 소설을 동시에 써서 내미는 것! 이것이야말로 소설을 쓰는 AI가 아니면 못할 일이 아니겠는가! 드디어 눈앞에 소설을 쓰는 AI가 등장한 것인가!”

이 글들을 실제로 에이아이가 썼는지에 관해 대표는 끝까지 확인을 해 주지 않는다.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소설책은 만들지 않는다는 대표의 출판사에서 소설 쓰는 에이아이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런 심증에 힘을 더하긴 하지만. 100개의 원고를 검토한 끝에 작가가 내리는 결론은 놀라우면서도 두렵다. “C는 소설의 전개가 경탄스러웠다. 나보다 나아. 이 스토리는 내 상상 바깥에 있어! 어디서 이런 스토리를 끌고 왔을까?” 벌써 5년여 전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와 대국에서 패했을 때 이세돌이 느꼈을 법한 충격과 자괴감을 다시 만나는 듯하다.

대표는 소설 쓰는 에이아이의 존재에 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면서도 그 가능성에 관해서는 매우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한다. 글머리에 인용한 발언이 그 일부인데, 그럴 경우 기존의 작가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게 특히 당사자인 작가들로서는 초미의 관심사일 테다. 소설 속 작가 역시 그런 질문을 대표에게 던진다. 다행히 대표의 답변은 고무적이다.

“작가가 필요 없는 시대는 없을 겁니다. (…) AI와 독자를 중재하는 작가도 존재하게 될 거라고 봐요. 선택하기를 싫어하는 독자의 경우에는 선택 도우미를 필요로 하겠죠. (…) 작가들도 진정한 작가,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AI를 활용할 겁니다.”

대표의 발언이 최종적 권위를 지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소설 속 작가는 그 말에 동의한다. “반갑다, AI야”라는 환영의 혼잣말, 더 나아가 “AI와 몸을 합치는 상상을 했다”는 대목에서 그 점은 확실하다. 누가 쓴 것인지도 모르는 소설 원고를 읽느라 정작 제 소설은 한 줄도 쓰지 못하던 그가 3개월 계약 연장을 결심하고 “나는 나의 소설을 쓰자”라 다짐하는 결말은 확실히 긍정적이며 나름 해피엔딩이라 하겠는데, 현실의 소설가들을 포함한 독자들 역시 긍정과 행복의 느낌을 공유하게 될지 궁금하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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