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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숲과 우리는 함께 회복될 수 있을까

등록 2021-08-13 04:59수정 2021-08-13 09:17

[한겨레Book]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자연처럼 살아간다
게리 퍼거슨 지음, 이유림 옮김 l 덴스토리(2021)

게리 퍼거슨의 <자연처럼 살아간다>에는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2005년 그는 아내 제인과 함께 카누를 타러 갔다. 아내는 스물다섯살이었다. 카누는 급류에 휩쓸렸고 그는 큰 상처와 골절상을 입었다. 하지만 아내는 실종되었다. 사흘 뒤 제인은 시신으로 인양되었다. 장례식 때 제인의 동료인 응급구조대원들이 장례식장 바깥에 소방서에서 가장 큰 소방차량을 세우고 하늘로 사다리를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 무전을 보냈다. “레드로지 소방서와 구조대에서 알립니다. 제인 퍼거슨을 기리는 마지막 무전입니다. 제인은 자연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활동을 하며 마지막을 맞았습니다.”

다리 부상이 낫자 게리는 갈색 가방 맨 위에 아내의 유골단지를 넣고 긴 여행을 떠났다. 아내의 유골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서부의 다섯 군데 자연에 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중 유타주 남부 계곡은 제인에 살아 있을 때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유골이 어디에 뿌려져야 할지 첫 번째로 꼽은 곳이었다. 게리가 유골을 들고 계곡을 찾은 그날은 뜨겁고 메말랐다. 그는 아내의 유골을 뿌릴 완벽한 장소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작은 언덕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을지 짐작조차 못할 곳이었다. 습지가 중생대의 퇴적지층으로 변하고 얕은 바다는 백악기 지층 안에 얼어붙은 곳이었다.

“그날 오후 내가 하늘로 날려 보낸 제인의 뼛가루는 별안간 바람이 사라진 공기 중에 한참 머무르다 느릿하게, 조금씩 빛바랜 사암을 등지고 북쪽으로 날아갔다. (…) 나는 바닥에 몸을 낮춰 온기가 남은 바위에 가만히 내 뺨을 댔다. 호박처럼 생긴 쓸쓸한 구름이 머리 위에 머물렀다가 이내 흩어졌다. 하늘나리 꽃잎에서 점심 식사를 끝낸 벌새 한 마리가 날갯짓하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단지 몇 분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그는 그 시간 동안 “어깨에 진 짐을 내려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내 삶에 생긴 구멍이 하늘과 반들반들한 바위와 나팔꽃이 있는 더 넓은 세상으로 메워지는 듯”했다. 그는 이후 자신의 회복은 엄청난 산불이 휩쓴 후 다시 시작하는 자연생태계와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결국 삶은 내 안에도 더 많은 삶을 탄생시킬 것이다.” 그가 말하는 ‘회복’은 우리에게는 비록 슬픈 일을 겪더라도 더욱 풍부하고 힘 있는 삶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산불을 맞은 자연이 그런 것처럼. 나는 이것이 그가 살아갈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이것이 ‘자연처럼 살아간다’의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가슴 아플 때 게리 퍼거슨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광활한 올리브 숲속에서 그리고 섬들에서였다. 독수리와 솔매와 제비가 너무나 가깝게 날아왔었다. 그때 처음 어깨를 스치는 제비의 날갯짓 소리를 들어봤다. 정말 크게 들렸다. 나는 세상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을 얻었다. 그리스의 산불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은빛으로 빛나던 잎이 아름다웠던 올리브 숲의 고요와 풍요로움을 생각한다. 이것들은 대체 어떻게 회복될 것인가? 올여름 폭염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에 이다지도 무관심한데. 숲과 우리는 함께 회복될 수 있을까? 애달프다.

<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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