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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어지는 길, 확장되는 서울

등록 2021-08-27 05:00수정 2021-08-27 10:33

시민의 삶 중심 답사 ‘서울선언’ 3부
수도권 대신 ‘대서울’ 개념 사용해
경기 넘어 강원, 충청까지 포괄
‘도시화석’ 탐구, 아픈 역사 보여줘

대서울의 길
확장하는 도시의 현재사
김시덕 지음 l 열린책들 l 2만원

서울은 어디일까.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가 서울일까. 인접한 도시들까지 모두 포함해야 할까. 아니면 법률상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및 경기도 일원의 지역’으로 정의돼 있는 ‘수도권’을 말하는 것일까. <대서울의 길>의 지은이는 서울에서 ‘길’을 따라 직장·학교·집 등 생활권이 연결돼 있는 지역까지를 서울, 정확하게는 ‘대서울’이라고 말한다.

<대서울의 길>은 문헌학자 김시덕이 ‘도시 문헌학’이란 방법론을 표방하며 서울을 답사하고 쓴 ‘서울 선언’ 시리즈의 세번째 책이다. 지은이는 첫번째 책 <서울 선언>에서 흔히 답사 대상으로 간주되는 궁궐, 박물관, 역사 유적 등이 아닌 아파트 단지, 상가, 골목, 공단, 종교시설 같은 현재 시민들이 살아가는 곳을 중심으로 한 답사기를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두번째 책 <갈등 도시>는 대서울 개념을 등장시켜 답사 지역을 파주, 고양, 의정부, 남양주, 성남, 용인, 의왕, 군포 등 서울 주변 경기 지역까지 확대하는 한편, 재개발·재건축, 특수시설 이전 등을 둘러싼 갈등들을 주요하게 다뤘다.

<대서울의 길>에서 서울의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서북쪽으로는 파주, 북쪽으로는 철원, 동쪽으로는 춘천과 원주, 동남쪽으로는 안성, 남쪽으로는 천안, 서남쪽으로는 아산 신창, 서쪽으로는 화성 남양반도와 강화도가 지은이가 생각하는 대서울의 경계다. 지은이는 대서울의 모습을 두 가지에 비유한다. 하나는 ‘카나트’라는 중앙아시아·서아시아의 물길이다. 물이 솟아 나오는 곳으로부터 지하 수로를 파서 사막 지대에 물을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서울시에서 주변 농업 지역으로 카나트식으로 도시가 퍼져 나갔으며, 그 주요한 경로는 철도와 도로였다.” 대서울의 전체 형태는 피자에 비유된다. “길을 따라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생활권, 예컨대 서울 사대문, 영등포, 강남을 중심에 놓고 보았을 때 피자 조각처럼 방사선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모습이 대서울”이다. 사람들은 선을 따라, 즉 자기가 사는 지역과 직장·학교가 있는 지역을 잇는 길을 따라 움직인다.

페르시아의 카나트. 열린책들 제공
페르시아의 카나트. 열린책들 제공

지은이는 대서울의 길들을 크게 서부, 동부, 남부로 나누고 철길과 도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확장돼가는 서울의 현장을 확인한다. 경춘선과 중앙선은 서울시 동부 지역과 경기도 동부 지역을 이을 뿐 아니라 강원도 서부의 춘천과 원주도 대서울로 편입시키고 있다. 서울에서 춘천의 대학교로 통학하는 학생들, 원주 혁신 도시로 통근하는 직장인들을 이 두 철도 노선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원주와 춘천뿐 아니라, 충북 청주·오송, 충남 천안·아산 등의 지역 역시 교통 발달로 인해 서울의 확장 지역으로서의 성격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서울 강남이 대서울 동남부로 넓어지는 ‘확장 강남’ 현상도 눈에 띈다. 이 현상을 낳은 두 개의 축은 경부고속도로·용인-서울 고속도로 등의 도로와 수도권 전철 8호선·분당선·신분당선·에스아르티(SRT) 같은 철도다. “에스아르티가 출발하는 수서역 주변은 쟁골마을이니 교수마을이니 하는 작은 마을과 비닐하우스 농업, 그리고 고층 아파트 단지가 공존하는 복잡한 시층을 보인다. 강남이 워낙 빠른 속도로 도시화하다 보니 여러 시간대의 공간이 엉켜 버린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 본사·사업장들과 대서울 동남부의 철도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강남의 확장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해석이다.

지난 3월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 한 컨테이너에 붙어있는 태극기와 펼침막. 열린책들 제공
지난 3월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 한 컨테이너에 붙어있는 태극기와 펼침막. 열린책들 제공

지은이가 길들을 따라 걸으면서 본 것은 대서울의 구조만은 아니다. 시민의 잊힌 역사, “현대 한국에서 일어난 끝없는 이주와 갈등, 철거와 정착의 과정” 등도 주요한 탐구 대상이다. 탐구의 단서들은 이전 저작들에서처럼 보통사람들의 삶의 터전, 그리고 ‘도시 화석’들, 즉 “쉼 없이 경관을 바꾸는 도시 속에서 뜻밖에도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옛 시기의 역사를 증언”하는 것들이다. 옛 문헌, 폐역 플랫폼, 폐철교, 철거 지역의 남은 건물, 버스 정류장, 여인숙, 펼침막, 머릿돌, 비석, 시장, 가게 같은.

지은이는 지난 3월 경기도 시흥시 북부에서 ‘대야 1 일반 공업 지역’을 걷다 태극기와 펼침막이 붙어 있는 컨테이너를 보았다. 펼침막에는 “도지사님 살려 주세요! 시장님 도와주세요! 가족 520명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쓰여 있었다. 근처에서는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잇달아 건설되고 있었다. 대야동 일대가 공업 지역에서 주거 지역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의 현장이었다.

경기도 포천시 천보마을의 벽화. 열린책들 제공
경기도 포천시 천보마을의 벽화. 열린책들 제공

경기도 포천시 천보마을 한 담벼락에는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으로 보이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상계동에서 이주한 주민들이 옛 마을을 그리워하며 그린 것이다. 1960년대 중반 청계천, 한남동, 명동 등에서 상계동 일대로 쫓겨난 철거민들은 20여년 뒤인 1987년 서울올림픽 준비를 이유로 상계동에서도 밀려난다. 고덕 신도시 건설에 따른 이주민들이 정착한 경기도 평택시 율곡마을에도 고향을 그린 듯한 벽화가 있다. “세입자·임차인들이 황무지를 간신히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놓으면 부재지주들이 나타나 재개발·재건축을 한다고 이들을 도시 바깥으로 몰아낸 것이 현대 한국의 도시 개발 역사였다.” 평택시에는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정착한 이주 단지가 네 곳 있다. 지산·남산·두릉·노와 지구다. 두릉 이주 단지에 있는 공적비에는 “꿈에서도 잊지 못할 정든 고향을 조국의 품에 안겨” 주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런 ‘제자리 실향민’(분단이 아니라 국가 개발 정책으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존재는 대서울의 성장의 이면에서 철거와 이주가 반복돼온 역사를 보여준다. “대서울은 실향민의 도시”인 것이다.

지은이는 “길을 따라 대서울의 끝까지 걸어가면 이제까지 볼 수 없던 방식으로 대서울을 넘어 한반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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