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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혐한과 혐일의 이분법을 넘어서

등록 2021-08-27 05:00수정 2021-08-27 11:54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이용덕 지음, 김지영 옮김 l 시월이일 l 1만5800원

재일 한국인 3세 작가 이용덕(사진)이 지난해에 발표한 소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는 제42회 노마문예신인상을 수상한 평판작이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법제화되고 대도시 코리아타운의 한인 가게들이 습격을 받고 문을 닫는 등 ‘혐한’ 분위기가 지배하는 근미래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인 자경단원들이 조선인들을 죽창과 곤봉, 단도 등으로 학살한 일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재일 한국인 3세 작가 이용덕
재일 한국인 3세 작가 이용덕

소설은 재일한국인인 30대 초반 남성 가시와기 다이치를 중심으로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나란히 전개되는 형식이다. 다이치는 20대 초반 남성 윤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본 청년 세 명에게 강간 뒤 살해당한 여동생의 복수를 꿈꾸는 김태수, 재일 한국인 청년회의 옛 동료 양선명, 극우보수정당의 활동대원인 일본 청년 기지마 나리토시 등을 규합해 모종의 음모를 꾸민다. 혐한 세력으로부터 코리아타운을 지키고자 ‘오쿠보 수비대’를 결성해 폭력에 폭력으로 맞섰던 그는 수비대 활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충격 요법’에 의지하기로 한 것. “대중에게는 충격을 주어야 해요. 그것도, 알기 쉽고 소화하기 쉽게 이야기로 감싸서 주어야 해요”라고, 그와 행동을 같이하기로 한 일본인 아내 아오이는 자신들의 거사를 설명한다.

소설의 또 다른 서사는 다이치와 선명이 한때 몸담았던 재일 한국인 청년회 회원들의 ‘귀국 사업’이다. 일본 안에서 갈수록 거세어져 가는 혐한 분위기에 절망한 박이화와 이천성 등은 한국으로 영구 귀국해 농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로 한다. 시모노세키에서 배편으로 부산을 통해 입국한 일행은 시골에 집을 얻어 농사를 지으며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지만, 그것은 머지않아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닥쳐 좌초 위기를 맞는다. 다이치의 음모와 박이화 등의 귀국 사업은 다소 성글게 연결되는 느낌도 있는데, 재일 한국인 청년들의 좌절과 모색을 다층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를 지닌다.

다이치가 꾸민 음모는 과연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지만 애초에 노렸던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소설은 한·일 두 나라 정부와 국민들 사이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준다. 책 말미에서 이슬람 배척 데모에 나온 남자가 “태극기와 일장기를 양손에 들고” 있는 장면은 혐한과 혐일의 단순 이분법을 넘어서는 작가의 문제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시월이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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