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런웨이
윤고은 지음 l 현대문학 l 1만4000원
윤고은은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소설을 빚어내는 데에 능한 작가다. 하늘에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상황을 설정한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무중력증후군>, 재난 여행을 소재로 삼아 영국의 권위있는 대거상을 수상한 <밤의 여행자들>, 평양의 아파트를 남한 사람들에게 분양한다는 단편 ‘부루마블에 평양이 있다면’ 등이 대표적이다. 그의 신작 장편 <도서관 런웨이>는 결혼생활을 대상으로 삼은 보험상품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으나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는 안나와 유리. 도서관 통로를 런웨이 삼아 걷는 사진을 자신의 에스엔에스에 올리고 도서관에서 프러포즈를 받을 정도로 도서관을 좋아하는 안나가 동네 도서관에서 두툼한 결혼보험약관집을 발견한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고가에 거래된다는 그 ‘책’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어느 날 문득 안나가 실종된 뒤 유리는 그 책을 매개 삼아 안나의 행방과 그 책에 얽힌 안나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
결혼 준비 비용에 대한 환불 서비스, 기후 공감 특약, ‘고위험군’ 신청자를 대상으로 한 가입 자격 심사, 납입기간 동안 결혼을 하지 않을 경우의 환급 규정 등 결혼보험을 둘러싼 세목들은 웃음을 깨물게 하면서도 결혼의 본질에 관해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책과 안나의 비밀에 관한 추리가 모두 끝난 뒤 안나가 유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그 말 속에 이 소설의 주제도 들어 있을 것이다. “우리 그럼 눈이 녹기 전에 끌어안읍시다. 눈이 있는 동안만 가능한 것처럼 서둘러 끌어안읍시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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