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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어린이에겐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등록 2021-10-01 05:00수정 2021-10-01 09:08

[한겨레Book] 김소영의 그림책 속 어린이

아기 곰의 가을 나들이
데지마 게이자부로 지음, 정근 옮김 l 보림(1996)

“선생님, 오늘부터는 공짜 바람이 불어요.” 한 어린이가 수업을 마치고 나서는 길에 해준 말이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안 틀었는데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게 ‘갑자기 신기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가을은 정말 신기한 계절이다. 큰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여름과 분명히 선을 긋고 가을 날씨가 시작된다. 아침저녁 바람이 알맞게 선선해서 낮의 뜨거운 햇볕이 두렵지 않다. 날마다 색이 달라지는 나뭇잎이나 장관을 이루는 하늘과 구름을 보는 것이 호사스럽다. 똑같은 날씨가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자꾸 바깥에 나가고 싶어진다.

<아기 곰의 가을 나들이>는 엄마와 함께 처음으로 연어를 잡으러 가는 아기 곰의 여정을 담은 그림책이다. 출간된 지 50년이 된 이 책을 가을마다 읽는다. 색색의 나무들로 빼곡한 숲, 푸르렀다가 붉어졌다가 캄캄해지는 하늘, 유속이 느껴지는 힘찬 강물, 무엇보다 숲에 사는 동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매번 감탄한다. 이 모든 장면이 목판화로 표현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나무에 새겨져 있을 요철과 거기 담긴 작가의 힘을 상상하면 구석구석 허투루 볼 수 없다. 바로 이런 책을 고전이라고 하는구나 싶다.

나무에 올라 잘 익은 머루를 따 먹으며 겨울잠을 준비하던 엄마 곰과 아기 곰은 달빛으로 물든 숲의 강가에서 연어 떼를 기다린다. “정말 올까요?” 하며 초조해하는 아기 곰과 달리 엄마 곰은 느긋하다. “틀림없이 올 거야.” 마침내 연어 떼가 나타나자 엄마 곰은 훌륭한 솜씨로 연어를 잡아 보이면서 아기 곰에게 “네 힘으로 잡아야지!” 하고 조금 차갑게 대한다. 덕분에 아기 곰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연어를 잡는 데 성공한다. 그러면서 물속의 신기한 세상과 제 힘으로 잡은 연어의 맛을 알게 된다. 아기 곰은 꿈속에서 밤하늘을 헤엄쳐 가는 커다란 물고기를 본다. 머지않아 엄마와 헤어지고 스스로 삶을 꾸려갈 때, 현실의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할 때, 이 꿈속 장면이 아기 곰을 응원할 것이다. 작가가 이 그림책을 통해 어린이에게 주고 싶은 것도 그런 응원이라고 생각한다.

잘 때 꾸는 꿈도, 마음속에 품는 꿈도 경험에서 생겨난다. 어린이에게는 좋은 경험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아기 곰에게 그랬던 것처럼 생존에 필요한 경험도 중요하고, 잊지 못할 여행이나 흥미로운 체험학습도 해보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어제와 다른 하루를 몸으로 느끼면서 ‘갑자기 신기하게 여겨지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도 어린이의 삶을 만드는 소중한 경험이다. 쾌청한 오후에 가을을 만끽하며 산책을 하다가 유치원 마당에서 뛰어노는 어린이들을 보았다. 한 명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어쩌면 저렇게 작은 얼굴에 맞는 마스크가 다 있을까. 가을이라는 계절의 경험과 감각이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새겨지고 있을까. 어쩔 수 없이 걱정이 들었다. 가을이 오래 머물기를 바라야 할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기를 바라야 할지 모르겠다. 독서교육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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