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
이근화 지음 l 창비(2021)
어떤 시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과 사물 사이를 응시한다. 이는 사물을 향해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어떻게 거기에 있을 참인지를 질문하면서 사물과 사물이 맺은 관계를 헤아리는 일이기도 하고, 그 관계가 쌓아올린 시간성을 감지하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허공처럼 놓인 사물과 사물 사이를 쳐다보며 거기에 있는 ‘나’를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이근화의 최근 시집을 읽다가 문득 사물과 사물 사이를 경유하여 사물과 생물이 엮는 역사를 이해하는 길을 얻었다. 사물은 으레 ‘事物’로 읽을 수 있지만, 죽음을 아우르는 ‘死物’로 읽히기도 하는 말. 때때로 시인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놓인 침묵을 듣는다. 아무것도 없다고 여길 수 있는 그곳을 가만히 존중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산 자가 도달하지 못한 삶의 비밀 같은 게 거기에 있다는 듯이.
“제사상 주변을 어지럽게 뛰노는 아이들을 말리지만/ 어른들도 귀신들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제사 음식들은 가지런하고 방향을 갖추었다/ 떡과 산적을 들고 설치는 아이들의 발은 제각각 자라겠지// 축문을 읽고 절을 두 번씩 올리는 사이/ 죽은 자와 산 자는 아무 말 없이 만나는가/ 대추 밤 배 사과 감이 구르지 않도록 잘도 쌓았다/ 삶과 죽음 사이 구른다면 누구의 발밑에 이를 것인가// 제주가 조금 넘쳐흘렀지만 무슨 상관이랴/ 메와 탕은 귀신의 것 들쥐와 길고양이 들의 것/ 골목의 어둠을 갉아대느라 바쁠 것이다/ 광장의 불빛이 환한데 등 돌린 당신은 외로운가/ 머릿속은 엉켜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겠지만// 생선 살을 찢어 아이들의 입속에 가만히 넣어준다/ 접시 위에 생선 대가리들 한번도 보지 못한 가시 앞에 눈이 멀었다/ 두려움이란 제 몸을 떠난 입과 같아서/ 헐벗은 채 떠도는 말들이 어지러운 것이겠지// 가지런히 모은 두 손에 슬픔과 분노가 부풀어오른다/ 풍선처럼 분명하고 환하게 터져버린다면/ 밥상이 엎어져도 다 같이 배가 부를 것이어서/ 살아서 절망하는 사람들이 죽어도 즐겁다는 듯이 모였다”(‘약속’ 전문)
제사를 지내는 날의 한 장면을 담아낸 시다. 얼핏 예사롭게 느껴지는 풍경일 수 있지만, 시인의 시선이 제사상과 그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 놓일 때면 심오한 질문이 생활 한가운데를 서늘하게 가로지르는 것 같다. 이를테면 말없이 이뤄지는 만남으로 죽음은 삶의 일부로 자리하는가, 실은 죽음을 제대로 맞이해야만 삶이 삶다워지는가와 같은 질문이. 좀 더 진솔하게 표현하자면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나날이 이어지는 와중에 끼어드는 이러한 사람과 귀신과 어둠과 불빛의 만남은 기어이 여기 외롭고 두렵고 어지럽고 슬프고 분노하며 살아가는 삶을 조명하려는가와 같은 물음으로, 거기 누가 있는지를 궁금해 하며 여기 누가 있는지를 스스로 살피는 시선으로.
한편 이 시는 의례 같은 건 잘 모르겠는 셈 치고 “어지럽게 뛰노는” 아이들이 발을 구르며 시작하는 시이기도 하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놓인 천진한 움직임은 모두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만든다. 우리 삶이 품은 가시를 우리 자신이 모르고 사는 게 마냥 두렵다고만 느낄 게 아니라 그런 건 그냥 “입속에” “넣”고 “살아서” 얻는 “절망”의 한 부분으로 삼자는 것도 같다. 시는 이렇게 삶의 무게를 이고 진 이들을 존중하는 자리를 지킨다. 양경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