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지음 l 창비 l 1만4000원 아무리 ‘에세이의 시대’라지만 소설가의 에세이는 조금 더 특별하다. 하물며 ‘계속해보겠습니다’ ‘건강하시기를’ 같은 무심한 구절에도 깊은 숨을 불어넣는 소설가의 에세이라면 더욱 그렇다. 소설가 황정은(사진)의 첫 에세이집이 나왔다. 많은 독자들이 기다려온 첫 에세이집 제목이 ‘일기’인 이유를 작가는 이렇게 썼다. “어떤 날들의 기록이고 어떤 사람의 사사로운 기록이기도 해서, 그것이 궁금하지 않은 독자들이 잘 피해갈 수 있도록 ‘일기 日記’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책을 구성하는 목차 11개를 여는 것도 ‘일기’이고 닫는 것도 ‘일기’이다. 독자는 우선 첫 ‘일기’를 펼쳐서 작가가 지난 코로나의 1년여를 어떻게 지냈는지 들여다본다. 코로나 직전 경기도 파주로 이사해 북적이는 외부 일상에서 멀어진 작가가 산책을 하고 책상 너머 호수공원과 집 앞 공터를 바라보며 고된 쓰기로 아픈 몸을 돌보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고립을 자처하는 팬데믹 일상을 보내면서 작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이 무사는 누군가의 분투를 대가로 치르고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의료노동자나 자영업자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선으로 이어져 있을 누군가들의 분투에 대해 작가는 생각한다. 그것은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을 보면서 떠올리는, 학대받는 어린이들이기도 하고 부모의 폭력을 피할 유일한 방법으로 주민등록을 말소하고 사는 젊은이들이기도 하며 한파에도 노숙 농성을 멈출 수 없었던 세월호 유가족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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