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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일본어판 30년 걸려 나와…번역자 정경모 선생 별세 아쉽다”

등록 2021-10-28 19:00수정 2021-10-29 16:28

황석영 작가 인터뷰
“통일운동가 정 선생님, 10년 전 번역 마무리
출판 여의치 않다가 일본 ‘서울서림’이 출간”
일본 요코하마 정경모 선생 자택의 유골함 옆에 <장길산> 일본어판 전 10권이 놓여 있다. 정강헌 제공
일본 요코하마 정경모 선생 자택의 유골함 옆에 <장길산> 일본어판 전 10권이 놓여 있다. 정강헌 제공

“정경모 선생이 <장길산>을 번역하기 시작한 건 80년대 후반부터예요. 1990년 무렵에 세권이 먼저 나왔는데, 정 선생이 다른 일들로 바쁘고 경황이 없어서 이어지지 못하다가 10여년쯤 전에 번역을 마무리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몇 출판사에 출간을 타진해 봤지만 여의치 않았던 것 같아요. 결국 이제야 책이 나왔는데, 정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라서 아쉬움이 큽니다. 생전에 책이 나오는 걸 보셨다면 좋았을 텐데요.”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전10권) 일본어판이 출간되었다. 지난 2월에 별세한 통일운동가 정경모(1924~2021년) 선생이 번역을 맡았고 출판사는 일본의 ‘서울서림’이다. 2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난 황석영은 “정 선생님이 결국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머무르시면서 <장길산>을 붙들고 번역하신 의중을 짐작해 보건대, 조국과의 연결을 이 번역 작업을 통해 확인하셨던 게 아니었나 싶다”며 “정 선생님께 마음의 빚이 많고, 후생으로서 제대로 보좌하지 못했다는 인간적 회한이 든다”고 말했다.

<장길산>은 1974년부터 무려 10년 동안 <한국일보>에 연재한 대하소설로, 홍명희의 <임꺽정>을 잇는 민중 영웅의 형상화를 통해 80년대 대하소설 붐을 이끈 문제작이다. 이번 일본어판 출간을 위해 재일동포 간첩단 조작 사건 피해자인 이철씨가 중심이 된 ‘<장길산> 일본어판 간행위원회’가 모금과 보급 캠페인을 펼쳐왔다. 번역자 정경모 선생의 아들인 정강헌씨는 일본 요코하마 자택에 모신 부친의 유골함 옆에 <장길산> 일본어판 전 10권을 올려놓고 뒤늦은 출간 소식을 고했다. 그가 작가 황석영에게 보낸 문자는 <장길산> 일본어판 출간의 어려움과 보람을 아울러 알게 한다.

“겨우 일본어판 출판됐습니다. 저승에 있는 아버지가 기뻐하고 있을 겁니다. 일본의 독서 상황으로는 10권이나 되는 책을 파는 건 쉽지 않지만, 열렬한 독자들이 구하고 있어요. 전 정치범 이철씨 등 일본어판 출판에 애쓴 분들이 20만엔씩 부담하면서 출판할 수 있었습니다.”

2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난 소설가 황석영. 최재봉 선임기자
2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난 소설가 황석영. 최재봉 선임기자

한편 지난해 6월 역작 <철도원 삼대>를 낸 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황석영은 다음 작품으로 ‘어른을 위한 동화’ <별찌에게>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별찌’란 유성의 순우리말. “우주를 떠돌던 유성이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조약돌 크기의 운석이 되어 숲에 떨어진 뒤 식물과 동물, 무생물 등 숲의 식구들과 사귀어 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철학 동화”라고 작가는 소개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창비 웹진에 절반 정도 연재하다 중단한 이 작품을 원고지 500장 분량으로 완성해 내년 봄쯤 출간할 예정이라며, “연재를 시작하며 쓴 ‘작가의 말’에 현재 나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만물은 영원히 흘러가는 정지된 찰나 속에 있으며 변화해 가는 과정이다. 죽은 듯 던져진 돌멩이도 사람의 시간으로 보면 미세하게 천천히 변화해 가는 과정의 생성물인 것처럼. 그래서 현존하는 모든 것들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있을 수 있기 위해서 애쓰는 중이다. 죽음은 영원 속에서 일어나는 한 변화일 뿐이다. (…) 현존하는 모든 것은 변해 가는 과정 속에서 인연의 그물망에 서로 연결되어 있다.”

책에 들어가는 삽화도 직접 그릴 예정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미술을 지망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한국작가회의 기금 마련 바자회 때에 오일 파스텔 그림을 석점 팔았던 기억이 있다”며 “출판사 쪽의 동의도 얻었다”고 말했다.

황석영 대하소설 &lt;장길산&gt; 일본어판(정경모 번역) 전 10권. 정강헌 제공
황석영 대하소설 <장길산> 일본어판(정경모 번역) 전 10권. 정강헌 제공

작가는 “‘<어린 왕자>의 아시아판’이라고 할 <별찌에게>를 마친 뒤에는 10년에 걸쳐 서너편 정도 본격 장편을 더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철도원 삼대>를 쓰면서 저의 만년 문학에 자신이 생겼어요. 1998년 출옥 뒤의 제 소설들은 나만의 양식을 찾기 위한 실험의 과정이었는데, <철도원 삼대>에 와서 서술과 서사 구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 자신 ‘민담 리얼리즘’이라고 이름 붙인 이 양식을 적용한 장편을 서너편 더 쓰고, 그 뒤에는 시와 소설이 결합된 아포리즘 스타일의 수상록 같은 걸 쓰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싶습니다. 지금 내 건강 상태로 보면 백살은 넘게 살 것 같아요. 단, 담배는 끊어야겠죠.(웃음)”

1962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단편 ‘입석부근’이 당선되어 등단한 그는 내년으로 등단 60주년을 맞는다.

“내년은 내 나이 여든에 등단 60주년이 겹치는 해입니다. 겸사겸사 늙은이들(=친구와 동료들) 좀 모아 놓고 한바탕 놀아볼 생각이에요.”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 “12년 공들인 ‘장길산’ 일어판 죽기전 꼭 출판됐으면”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6486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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