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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상실과 결핍을 끌어안고 공감하기

등록 2021-10-29 04:59수정 2021-10-29 09:23

선릉 산책

정용준 지음 l 문학동네 l 1만4000원

정용준의 세 번째 소설집 <선릉 산책>에는 단편 일곱이 실렸는데, 이 가운데 표제작과 ‘사라지는 것들’ ‘미스터 심플’이 각종 문학상의 본상이나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들이다. 문학의 본질이 그러하기도 하지만, 수상작을 포함한 대부분의 작품이 모종의 상실과 결핍을 지닌 이들을 주인공 삼아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표제작은 스무 살 자폐 청년 ‘한두운’을 열두 시간 동안 돌보게 된 ‘나’의 이야기다. 자폐의 특성상 둘 사이에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은데,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매우 지난하고 곡절과 시행착오를 수반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묘사하는 작가의 문장은 조심스럽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소설 앞부분에서 ‘그는 어떤 사람일까’ 자문했던 화자가 말미에서도 여전히 ‘오늘 만난 한두운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나’라는 의문을 놓지 못하는 데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정용준 작가
정용준 작가

‘사라지는 것들’은 장성한 아들에게 “그만 살기로 했어”라고 말하는 엄마의 캐릭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화자인 아들은 사고로 둘째 아이를 잃었고 사고 당시에는 화자의 엄마가 아이를 챙기고 있던 참이었다. 그 사고로 집안에 “실금이 생겼고” 그 실금이 조금씩 넓어진 끝에 화자는 이혼을 하고 엄마는 삶을 놓아버리기로 마음먹기에 이른 것. “난 좋은 엄마는 아니었지만 너랑 진수 잘 키우려고 애썼다. 그래도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나를 미워하기만 했지. 무슨 불평이 그렇게 많은지. 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할 수 없는 일도 했다.” 이런 엄마의 항변은 한국 소설에서 그간 듣기 어려웠던 발화여서 반갑다.

‘미스터 심플’의 두 주인공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다. 화자 ‘나’는 함께 살던 에이치(H)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마도 스스로) 죽은 뒤 상실감과 배신감에 시달리는 인물이고, 그와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호른 연주자는 아내의 갑작스러운 결별 통보로 고통받는 처지다. 이렇게 상실의 경험을 공유한 동류의 교감은 다른 단편 ‘두부’에서도 비슷하게 그려진다. 투렛증후군을 지닌 인물의 이야기인 ‘이코’가 표제작과 통하는 주제를 지녔다면, ‘두번째 삶’은 집단 괴롭힘이라는 소재를 미스터리 복수극으로 소화한 작품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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