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타자기 치는 남자>의 공연 장면. 극단 명작옥수수밭 제공
“야마가 뭐야?” 저 역시 듣기도, 묻기도 했던, 기자들이 쓰는 기괴한 말입니다. ‘야마’란 기사의 주제나 핵심을 가리키는데, 예전보단 덜 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사에 ‘야마 잡는’ 관행은 요지부동입니다. 복잡한 사안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순기능이 없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복잡성과 중층성을 특징으로 하는 오늘날 다수의 중요 현안까지 주관적 가치판단을 기준 삼아 단순화시켜 버리는 데 있습니다.
짧은 기사가 안고 있는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야마의 관행에는, 정해준 대로 받아들이라는 오만한 권력의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사이다’에 취한 이들은 환호할지 모르겠지만요. 여론이 극단으로 갈리고 사실을 무시하는 견해에 솔깃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데, 기자들의 책임이 없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겠죠.
‘야마’가 강력한 책을 종종 만납니다. 이런 부류는 슬그머니 놓아버리게 되는데, 주제의식은 뚜렷해야겠으나 지나치게 단순하면 곤란해서입니다. 없는 정답을, 있을 수 없는 확답을 제시하는 책은 사기성이 짙은 경우가 많습니다. 결론보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유심히 살피는 까닭입니다.
올해 대산문학상 희곡 부문에서 수상한 차근호 작 ‘타자기 치는 남자’에 대한 심사평이 눈에 들어옵니다. “권력이 폭력으로 삶을 강박한다면, 책읽기와 글쓰기는 삶의 근원으로 이끄는 원천과도 같다.” 장편 <밝은 밤>으로 수상한 최은영 소설가는 “어떤 사람의 삶도 생각만큼 작지 않으니, 쉽게 생각하거나 쉽게 판단하지 말자는 말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삶을 쉽사리 재단하여 강박하는 권력에 맞서기 위해 책과 글에 매진한다면 얄팍한 ‘야마’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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