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한겨레문학상 정아은 신작소설
“억울한 사람 나오지 않도록 미투운동은 더 섬세해져야”
“억울한 사람 나오지 않도록 미투운동은 더 섬세해져야”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정아은 지음 l 문예출판사 l 각 권 1만5000원
정아은은 세태의 관찰과 풍속의 묘사에 능한 작가다.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모던하트>가 직장 여성의 일과 사랑을 그렸다면, 두 번째 소설 <잠실동 사람들>은 교육과 주거와 욕망이 뒤엉킨 학부모 사회를 부각시켰고, 세 번째 작품 <맨얼굴의 사랑>은 성형외과를 무대로 삼아 사랑의 허와 실을 들추었다. 등단 뒤 2년 터울로 신작을 내던 그가 에세이 <엄마의 독서>와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로 한눈을 파나 싶더니 4년 만에 신작 장편을 들고 소설 복귀를 알렸다. 그것도 이번에는 한꺼번에 두 권이다!
정아은의 신작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와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은 각각 ‘지성의 이야기’와 ‘화이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며, 지성과 화이를 주인공 삼은 독립적인 작품인 동시에 두 권을 함께 읽을 수도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지성의 이야기’가 앞선 시간을 다루는 만큼 <그 남자…>를 먼저 읽고 <어느 날…>을 이어서 읽는 게 좋겠다.
‘지성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인 쉰네살 ‘독신’ 남성 문학평론가 김지성은 두 차례 심각한 사회적 몰락을 겪는다. 본업인 문학평론을 넘어 시사평론가로서도 맹활약하던 그가 텔레비전 생방송 토론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같이 다닌 친구이기도 한 현직 장관을 흥분된 어조로 맹비난함으로써 ‘국민 배신자’로 등극한 것이 첫 번째 몰락이었다. 진보 정권 각료를 비판한 토론 뒤 진보적 색채를 지닌 신문 ‘시민일보’에서는 그가 3년 동안 써왔던 칼럼 중단을 통보한 반면, 대표적인 보수 신문 ‘신화일보’에서는 그에게 칼럼 집필을 의뢰해 온다.
한때 ‘안티신화운동’에 몸담기도 했던 진보적 지식인 지성에게는 옛 동료들이 등을 돌리고 적과 동지가 뒤바뀌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데,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큰 타격이 닥쳐 온다.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온 여성 시인 민주가 그를 상대로 ‘미투’ 고발을 하고 숨지는 일이 발생한 것.
“문인 몇 명이 엄중한 문단 문화 검토대회를 열었고, 경쟁적으로 지성을 도마 위에 올렸다. 그 과정에서 지성은 수십 명의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휘두른 문단의 권력자로 둔갑했다. (…) 편집자 한 명이 실명으로 그에 대해 미투를 선언했고, 그와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작가지망생 두 명이 익명으로 그에게 성희롱을 당했음을 공표했다.”
평론으로 등단했을 때부터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여성운동을 지지해 왔던 지성으로서는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인데, 그가 술에 취한 채 민주와 동침했던 날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바람에 일이 더욱 고약해진다. 그가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하고 사방에서 날아오는 뭇매를 묵묵히 견디는 사이, 대학 강의도 없어지고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자리도 날아가 버린다. 그렇게 겹으로 궁지에 몰리며 사회적 사망 선고를 받다시피 한 지성에게 한 가닥 온기를 베푼 존재가 어느 날 문득 그의 집으로 들어온 낯선 여자 나채리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의 표현을 당겨 쓰자면 “귀엽고 부드럽고 계산 없는 존재, 이성과 합리가 배제되고 육신과 감각만 남은 존재 (…) 천진하고 무구한 여인.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여인” 채리가 곁을 지키면서 그는 조금씩 상처에서 벗어나고 자신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스포일러의 위험성 때문에 상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성의 미투 건은 소설 안에서 몇 차례 반전을 거듭하며 지성 자신과 주변 사람들은 물론 독자 역시 시험에 들게 한다. 미투로 인한 희생자가 거론되고, ‘파시즘이 되어가는 페미니즘’이라는 표현도 등장하며, 에스엔에스 공간에서는 “증오의 말들, 제압하려는 말들, 자기증명의 결기로 가득 찬 말들”이 서로를 때리고 찌르며 악다구니를 친다.
“지식인이란 대체로 남들에 대해 평가를 내리기 좋아하지만, 오히려 자신은 돌아보지 못하는 모순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인물과, 동물처럼 감각을 중심에 놓는 사람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담은 작품이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예요.”
지난 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작가는 “나도 십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페미니스트로 살아왔고 당연히 미투운동을 지지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오는 억울한 사람들의 경우를 간과하지 않아야 더 많은 공감을 얻고 힘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절대선이나 절대악이란 건 없고, 윤리를 따지자면 사안별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소설과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에서는 또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언론이 지닌 문제에 대한 비판도 보이는데, 이와 관련해 작가는 “다른 권력과 달리 언론은 선출 절차가 없기 때문인지 오히려 더 제어되지 않는 느낌”이라며 “노골적인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사안 자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보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느 날…>은 기업 사장인 남편과 두 딸을 두고 집을 나갔던 마흔한 살 여성 화이가 43일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화이는 아이처럼 자기중심적인 동시에 폭력적인 남편, 남편 회사의 임원인 권형욱 상무와 그 부인인 주석희와 함께 음모와 배신, 욕망과 증오가 어우러진 한바탕 난장을 연출한다.
“남자 선배 중 한 명은 화이의 얼굴에 ‘색기’가 있다고 표현했다. 눈, 코, 입, 모두 밋밋한데 넌 참 이상하게 끄는 데가 있어. (…) 은밀한 말이 불쑥 내면으로 들어와 죄책감과 불길함, 불안함을 만들어냈고, 그 이후 화이는 그 느낌과 평생 사투를 벌였다.”
이 대목은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이라는 제목이 나온 배경을 설명해 주는 동시에, 이 작품과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를 연결하는 맥락을 알려준다. 두 소설의 더 구체적인 연관성은 직접 책을 읽으면서 확인해 보기를 권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정아은 지음 l 문예출판사 l 각 권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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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장편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와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문예출판사) 두 권을 한꺼번에 출간한 정아은 작가가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정 작가는 2013년 장편 <모던하트>로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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