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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거리] 각혈의 기록, 지극한 사랑

등록 2021-11-26 04:59수정 2021-11-26 11:24

조금은 착잡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봅니다. 책 바깥 세상에서는, 학살자가 자연사했고 전염병은 기세등등하며 종부세 아우성이 울려 퍼집니다. 소음 속에서 때때로 현실감을 잃습니다. 이럴 땐 책세상으로 깊이 가라앉아 의지적으로 몰입합니다. 그곳에서는 현실보다 더욱 치열한 현실이 침묵 속에 가동됩니다.

<우리 근대의 루저들>(글누림, 2020)에서 만난 20세기 한국 소설가들은 “최고 비기라 할 글쓰기가 밥벌이가 된 순간 이내 가난을 제2의 숙명으로 떠안아야 했”습니다. 지독한 가난이 운명을 뒤흔들고 “생존을 위한 각혈과 각골의 기록”으로써 글쓰기 노동을 이어갔습니다. 값비싼 아파트를 사서 사는 이들이 피 토하고 뼈에 새기는 심정으로 외치는 투쟁의 함성을 들으며 여기까지 상념이 미쳤습니다. 작가적·지성적·예술적·문명적 각혈과 각골이 종부세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를 펼쳐들었습니다. 작가 한강은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제주 4·3을 통해 작가는 “지극한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먼저 떠올렸겠지요. 5월 광주의 고통스런 이야기는 “일상의 빈틈을 수시로 파고들며, 밤이면 악몽으로 몸을 바꾸어 독자를 찾아온다”고 최재봉 기자는 적었습니다. 두 소설에서 마주하게 되는 ‘일상의 균열과 한밤의 악몽’은 우리를 냉정하게 어둠으로 이끌어갑니다. 학살자의 죽음을, 사람을 향한 사람의 폭력의 역사를 직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삶이 죽음과 다르지 않았을 자연사를 냉혹하게 바라보며, 죽음을 넘어 삶으로 건너가는 지극한 사랑을 곱씹어야 할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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