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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고집쟁이 남편도 죽고 나니 그립구려

등록 2021-12-17 04:59수정 2021-12-17 19:27

산 사람은 살지
김종광 지음 l 교유서가 l 1만4500원

<산 사람은 살지>는 김종광(사진)이 기획한 시골 장편소설 시리즈 ‘면민실록’의 첫 작품이다. 김종광은 그간에도 자신의 고향 보령을 무대로 삼은 ‘충남 안녕시 육경면 역경리’ 주민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소설로 발표해 왔다. 특히 작가 자신의 부모님이 주요 인물로 등장해서 독자들을 웃기고 울렸다. 어느덧 세월이 흐르고, 부친이 연년에 작고하시면서 어머니만 홀로 남게 되었다. <산 사람은 살지>는 그렇게 홀로 남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어머니가 주로 2010년부터 2013년 사이에 쓴 일기와 병치시키면서 들려준다. 작가 어머니의 실제 일기를 바탕으로 삼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이 서러워요. 당신 장례식 때 내가 수백 번 들은 말이 뭔지 아세요?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밥 먹으라는 말이었어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은 듣는 이를 서럽게 하지만 결국은 수긍할 수밖에 없는 금언이기도 하다. 2019년 5월에서부터 이듬해 5월까지를 배경 삼은 소설에서 남편 김동창은 6월에 숨을 거두고, 홀로 남은 아내 이기분은 일기를 들추며 지난날을 회고한다. 

“저렇게 옹졸한 고집쟁이 남편을 만나 평생 마음고생하며 사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다.” “진정 억울하다. 내 살아온 세월이. 무서운 남편을 만나 큰소리 한번 못하고 절절매면서 전전긍긍 살았는데 보기 싫게 망가진 내 모습.” 

이기분이 2013년과 2016년에 쓴 일기에서 남편은 옹고집에 폭력적이어서 아내를 힘들게 하는 존재이지만, 남편이 죽고 난 뒤 남은 것은 사무치는 그리움일 뿐이다.

“술만 마시고 식사를 안 해도 남편이 살아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사무쳤다. 남편은 동반자였고 친구였고 뒷배였고 지킴이였고 그 모든 것이었다. 남편은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홀로 남은 이기분은 생전에 남편이 손수 지었던 낡은 헛간을 부숴 없애기로 하고서는 막상 철거 작업이 진행되자 “남편 인생이 사라지는 것 같다”며 아예 자리를 피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편과 같이 연극을 보았던 날의 일기를 다시 읽으면서는 ‘여보,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라는 남편의 말을 헛듣기도 한다.

“연출된 시골”이 아닌 “고대로의 시골”(‘작가의 말’)을 담겠다는 작가는 가까운 친척들과 동네 노인들의 잇따르는 부고, 힘은 들고 돈은 되지 않는 농사일의 어려움 등을 냉정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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