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에타의 첫 겨울
롭 루이스 지음, 정해왕 옮김 l 비룡소(2014)
어린 쥐 헨리에타는 첫 겨울을 혼자서 나야 한다. 엄마가 헨리에타를 낳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에게 조언을 받은 헨리에타는 일찌감치 땅을 파서 곳간을 만들고 열매도 모았다. 아늑한 굴에서 느긋이 겨울을 기다리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난데없는 큰 비로 먹을거리가 다 쓸려나가기 전까지는. 그래도 헨리에타는 다시 겨울 식량을 모으는데 이번에는 벌레들이 모두 훔쳐 먹어 다시 곳간이 빈다. 세 번째 월동 준비는 쉽지 않다. 헨리에타도 지쳤고 열매도 별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소식을 들은 동물 친구들이 먹을 것을 가져와 곳간을 채워주자 신이 난 헨리에타는 잔치를 열어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먹고 마신다. 곳간이 다시 텅 빈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고난에 지지 않고 자기 힘으로 모진 계절을 나려는 헨리에타를 보며 조마조마했다. “아직 아가”인데 여태 어떻게 지냈을까, 성실하게 사는데도 시련이 이어지니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어린 주인공이 고생하는 장면은 늘 안쓰럽게 마련이다. 누구나 아무 잘못 없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삶이 그렇다. 이 책에는 삶이 담겨 있다.
이 그림책의 좋은 점은 삶의 다른 면도 담겨 있다는 것이다. 잔치가 끝난 뒤 헨리에타는 피로와 포만감에 일단 한숨 자기로 한다. 그 사이 겨울이 지나간다. 겨울잠이라니, 다행스러울 뿐 아니라 자연의 이치에 맞는 마무리다. 그런데 만일 헨리에타에게 식량을 마련하라고 알려준 동물들이 없었다면, 헨리에타의 사정을 살핀 동물들이 없었다면 애초에 겨울을 맞이할 수나 있었을까? 비록 자기들이 가져온 양식을 거덜 내고 가긴 했지만.
짐작하건대 동물 친구들은 봄에도 여름에도 헨리에타를 찾아왔을 것이다. 집 짓기를 도와주고 열매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아플 때 돌봐주었을 것이다. 이 책을 다시 보면서 ‘보살피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 겨울 준비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순간이 온다. 누구에게나 자립의 기회만큼 이웃과 공동체가 필요하다. 우리가 서로의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이 시대의 어린이에게 꼭 가르쳐야 할 가치다. 도움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저절로 알게 되지 않는다. 배워야 할 수 있다. 헨리에타도 다른 동물을 기꺼이 도울 것이다.
책에 관심이 적은 어린이도 주변의 믿을 만한 어른들이 책 읽는 모습을 보면 독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른 처지의 사람들을 살피고 돕고 나누는 어른들을 자주 볼 때 어린이도 그런 사람에 가까워진다. 연말연시의 조금 뻔한 이벤트라도 좋다. 헨리에타를 찾아가 문을 두드리자. 겨울에는 추위뿐 아니라 온기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자.
유아. 독서 교육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