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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애도와 조롱의 ‘죽음 정치’

등록 2021-12-24 04:59수정 2021-12-24 19:16

숭배 애도 적대
자살과 한국의 죽음정치에 대한 7편의 하드보일드 에세이
천정환 지음 l 서해문집 l 1만7000원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는 2013년에 낸 책 <자살론>에서 주로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 자살의 원인과 성격, 문화적 표상을 천착한 바 있다. 그가 새로 낸 <숭배 애도 적대>는 그 책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작업으로, 1990년대 이후 사회적 성격을 지니는 자살의 양상과 맥락, 함의를 다룬다.

1991년 4월26일 시위에 나섰던 명지대생 강경대가 경찰의 폭력으로 숨진 사흘 뒤, 전남대생 박승희가 규탄집회 도중 분신자살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련의 정치적 자살은 이른바 ‘분신 정국’을 조성하며 전국을 용광로처럼 들끓게 만들었다. “1991년 그해 봄, ‘거리의 학생’ 중 하나였던” 천정환 교수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에 낸 이 책에서 그해 봄 정치적 죽음의 의미를 객관화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 이후 민주화와 민족 자주, 민중 생활권 보장을 요구하며 감행한 자살은 사회적으로 “거의 언제나 공감을 얻어왔다.” ‘열사의 정치학’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1991년 봄의 연쇄 자살은 그 한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과 정원식 국무총리 달걀 투척 사건을 계기로 열기는 싸늘하게 식었고, 그것은 ‘열사 정치’에 대한 대중의 공포 및 혐오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천 교수는 분석한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시민이 노 전 대통령 묘역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시민이 노 전 대통령 묘역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책은 이어서 2000년대 이후의 노동열사,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2010년대 이후 고위 공직자들의 잇따른 자살 그리고 설리와 종현 등 연예인들의 자살을 차례로 짚는다. 특히 노무현의 죽음은 지지자들에게는 죄의식·우상화·‘애도를 이용하기’를, 반대자들에게는 조롱·혐오·공포를 부추기며 “증오의 정치와 감정정치를 되풀이”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다 같은 사회적 자살이라고는 해도 계기와 효과가 서로 다른 사례들이라 ‘죽음정치’라는 하나의 열쇳말로 매끈하게 포괄되지는 않는 느낌이다. 2010년대 이후 노동자들의 자살이 과거와 같은 정치적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서도 “노동운동 말살을 저지하고 노동자-다중의 주체 재구성에 나서야 할 것이다,라고 쓰고 마칠 수밖에 없다”고 쓰는 데에서는 지은이가 맞닥뜨린 곤경을 짐작하게도 된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살 예방을 위해 제안한 이런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다. “계속 자살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고루 나눠 가지도록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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