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겸 소설가 안정효씨.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번역가 겸 소설가 안정효(81)씨가 성폭력 의혹에 휘말렸다. 2017년 10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열린 행사에 참가했다가 재미교포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미국 리버폴스 위스콘신대에서 한국교류국장으로 일했던 정영수(55)씨는 최근 출간한 <늦사랑 편지>라는 책에서 대학에서 열린 ‘한국의 해’ 행사 초청 인사로 현지를 방문했던 안정효씨가 자신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2017년 10월2일 새벽 안씨가 자신이 자고 있던 방에 속옷 차림으로 들어왔다가 자신이 비명을 지르자 방을 나갔다는 것. 정씨는 ‘안정효의 마지막 이메일’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에서 2016년 12월 초부터 10개월간 자신과 안씨가 주고받은 이메일을 공개하며 안씨가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성적인 표현을 구사했다고 주장했다.
책에 실린 안씨의 이메일에서는 정씨를 “사랑하는 영수에게”라 칭하며 “다음에 제주도 갈 때 같이 가고 싶어요. 제주도 어느 학교에서 강연이라도 하고, 이삼일 밤낮을 온통 둘이 연인처럼 손잡고, 끌어안고”라거나 “나 사실 가능하면 이번 모처럼 신혼부부처럼 영수하고 한 달이라도 같이 지내고 싶은 공상 많이 했어요”라며 사랑을 표현한 대목들이 보인다. 술에 취해서 쓴 듯 “난 마르고 닳도록 당신 미친 듯이 사랑할 거야”라는 말을 맞춤법에 맞지 않게 쓴 대목도 있었다.
정씨는 “‘혼자 하는 마지막 사랑’은 시간이 갈수록 절제의 거름망을 벗어났다. (…) 어느새 안정효 선생님의 ‘혼자 하는 마지막 사랑’은 폭력이 되어 있었다. 감정폭력, 언어폭력, 정신적 폭력”이라고 썼다.
이에 대해 안정효씨는 3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정씨의 초청으로 미국에 갔고 학교 예산이 넉넉하지 못해 정씨의 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첫날 시차 때문에 잠에서 깨는 바람에 강연 원고를 정리하고자 부엌의 스탠드를 써도 되겠냐고 물어보려고 정씨의 방문 앞으로 갔을 때 돌연 정씨가 비명을 질렀다”며 “정씨는 방문을 열어 놓은 채 자고 있었고,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으며, 속옷이 아닌 잠옷 차림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그날은 그대로 돌아 나왔고 이튿날 정씨의 집을 나와 호텔로 들어갔다”며 “호텔 비용은 물론 애초에 1천 달러라고 했던 초청 강연비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정씨는 30년 전부터 몇 차례 내 강연을 듣고 나를 존경한다며 행사에 초청했다. 행사 초청 이전에 네 번 한국에 왔는데 올 때마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꼴로 나와 만나 술을 마셨다”며 “술을 마시다가 자신이 묵고 있던 호텔로 가자고 해서 호텔 방에서 술을 마시고 침대에 나란히 누웠던 적도 두 번 있었지만 성관계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초청 강연 행사 뒤 연락이 끊겼던 정씨가 지난해 2월 인쇄된 책 원고를 보내면서 딸들에게 알리겠다는 둥 협박을 했다”며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빼고 이상하게 줄거리를 짜서 보냈더라. 나도 그 여성을 모델로 한 일종의 심리소설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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