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무웅 문학사론저 ‘한국 현대시’…최남선부터 김남주까지 망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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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학사적 맥락을 찾아서
염무웅 지음 l 사무사책방 l 2만5000원 원로 문학평론가 염무웅의 <한국 현대시>는 체계적인 시사(詩史)를 표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주요 시인과 작품을 설명함으로써 느슨하게나마 한국 현대시의 역사적 줄기를 꿰어 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책에 실린 글은 대부분 기존 평론집에 수록되었던 것들이고, 발표 연도도 1969년에서 2021년까지 무려 반세기 남짓에 걸쳐 있다. 그럼에도 지은이 나름의 일관된 시각과 문제의식이 탄탄하고,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문단사적 서술이 흥미를 돋운다. 흔히 한국 근대시의 효시로 꼽히는 작품이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이고, 이 작품이 발표된 1908년을 한국 현대문학의 기점으로 삼고는 한다. 그러나 이런 통설에 염무웅은 동의하지 않는다.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출현이 근대시의 탄생을 예고하는 징후적 사건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 자체가 근대시의 출발을 알리는 역사성을 획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1920년대 중반에 나온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과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 등이 진정한 근대시의 출발이라고 그는 보는데, “‘해에게서 소년에게’ 같은 어설픈 모방시로부터 ‘진달래꽃’, ‘님의 침묵’ 같은 무르익은 자유시에 이르는 도상에서 한국시의 내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지은이는 쓴다. 이들에 이어 정지용·백석·이용악 등 1930년대 시인들을 비롯해 1940~50년대 주요 시인들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는 건너뛰고 책은 1960년대 시의 양대 흐름이라 할 전통주의와 현대주의(모더니즘)를 대표하는 서정주와 송욱에 대한 비판으로 넘어간다.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에 출간된 서정주의 첫 시집 <화사집>에 관해 지은이는 한계와 문제점이 없지 않지만 “식민지적 현실에 대한 일종의 저항을 함축하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귀촉도>(1948)와 <서정주시선>(1956)의 “반역사적·비사회적 발전”을 거쳐 <신라초>(1961)와 <동천>(1968) 같은 60년대 시집에 오면 “서정주는 마침내 오만한 전통주의자로 변신”했다는 것이 염무웅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서정주의 대극이라 할 송욱은 어떨까. 모더니스트 송욱의 이른바 ‘언어실험’에 대한 지은이의 비판은 서정주에 견주어서도 훨씬 더 신랄하다. “비상식적 언어 날조” “변명의 여지 없는 속임수” “무책임한 야유와 내용 없는 말장난과 페단티즘(현학)의 악취를 풍기는 어휘들의 홍수”처럼 사뭇 감정적인 표현들은 이 글이 발표된 1969년에 염무웅이 이십 대 열혈 청년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려주는 듯도 하다.

주요 시인과 작품을 통해 한국 시문학사의 맥락을 구축하고자 한 문학사론저 <한국 현대시>를 낸 원로 문학평론가 염무웅. “시론이나 시인론에 가까운 글을 쓸 때마다 내가 다루는 대상이 우리 현대시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가를 의식해왔다”고 ‘책머리에’에 썼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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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론저 <한국 현대시>를 낸 원로 문학평론가 염무웅.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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