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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상엔 왜 슬픈 책이 있는 거야?” 여섯살 조카가 물었다

등록 2022-01-07 05:00수정 2022-01-07 11:27

[한겨레Book] 양경언의 시동걸기
슬픔을 다루는 일에서 물러서지 않는 책들
삶을 살아가며 맞이하는 ‘진짜 이야기’ 들려줘

진짜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허현숙 옮김 l 민음사(2021)

새해를 맞이해 여섯 살이 되는 조카가 그림책을 읽던 중에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 서럽게 울까 싶어 슬쩍 살폈다. 책 속에는 주인공의 소중한 친구가 기대했던 자리에 있지 않고 오히려 사라져버린 상황이 표현되어 있었다. 그 눈물에 담긴 마음을 알 것도 같아 잠자코 있던 내게 조카는 여전히 엉엉 울며 물었다. “왜 세상에는 슬픈 책이 있는 거야?”

그러게, 왜 세상에는 마음을 아프게 하고, 몸을 힘들게 하는 (눈물 흘리는 일에 드는 체력적인 소모는 상당하다. 울 때, 우리는 온몸으로 운다) 슬픈 이야기가 있는 걸까? 왜 어떤 책은 슬픔을 다루는 일에서 물러서지 않으려 할까?

슬픔 역시 세상을 이루는 소중한 일부여서일 것이다. 혹은 어떤 깨달음은 슬픔을 통해야만 찾아오기도 한다. 삶에서 사수해야 하는 건 미디어의 온갖 프로그램에서 강조하는 희희낙락한 순간만이 아니다. 살아 있으므로 느끼는 ‘진짜 이야기’는 슬픔을 통해서도 전달된다. 슬픔은 피해야 할 게 아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겐 소설가로 더 많이 알려진 캐나다 출신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총 열여섯 권의 시집을 상재한 시인이기도 하다. 작가가 1981년에 발표한 시에는 ‘진짜 이야기’의 정체를 탐문하는 시가 나온다.

“1/ 진짜 이야기를 청하지 마라./ 왜 그게 필요한가?// 그것은 내가 펼치는 것이거나/ 내가 지니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항해하며 지니는 것,/ 칼, 푸른 불,// 행운, 여전히 통하는// 몇 마디의 선한 말, 그리고 물결.// 2/ 진짜 이야기는 해변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잃어버렸다, 그것은 내가 결코// 가진 적 없는 어떤 것. 이동하는 빛/ 속에서 검은 나뭇가지들이 엉킨 것,// 소금물로/ 채워진 흐릿한// 내 발자국, 한 움큼의/ 조그마한 뼈들, 이 부엉이의 죽음./ 달, 구겨진 종이, 동전,/ 옛 소풍의 반짝임,// 연인들이 모래 속에/ 백 년// 전 만든 구멍들, 단서는 없다.// 3/ 진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 속에 있다./ 어지러운 색깔들, 폐기되거나 버려진/ 옷더미 같은,// 대리석 위의 마음 같은, 음절 같은/ 도살업자가 버린 것과 같은.// 진짜 이야기는 악랄하고/ 다층적이며 결국// 진실하지 않다. 왜 너는/ 그것이 필요한가? 진짜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청하지 마라.”(‘진짜 이야기’ 전문)

“진짜 이야기”는 우리에게 처음부터 답으로 쥐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어떤 순간을 직접 겪어나가는 동안 맞이하는 것, 그 과정에서 사라지기도 하는 것. 누군가에게 속한 채 반짝였다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옮겨가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에게도 파악되지 못하는 것. “폐기되거나 버려진” 자리조차 이 역시 진실의 한 형태임을 숨기지 않고 있는 것, 그러므로 엄연한 진실임에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도 한 것. 진짜 이야기는 하나의 표정, 하나의 표현만으로 쓰이지 않는다.

우물쭈물 중언부언하고 있는 내게 조카는 스스로 답을 구한 듯 말을 이어갔다. “아, 슬픈 책을 만들었으니까 슬픈 책이 있는 거야?” 나는 조카의 그 말을 ‘이 세상에 슬픔이 있으므로, 슬픈 책이 있다’로 들었다. 어쩐지 요즘은 슬픔을 피하느라, 없다고 여기느라 거기에 담긴 ‘진짜 이야기’ 역시 놓치고 마는 사회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시의 말마따나 진짜 이야기는 청해서 만들어낼 게 아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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