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늦도록 책을 읽었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질 때마다 환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습니다. 캄캄한 밤인데도 낮 동안 쌓인 눈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밟은 눈은 유독 빛을 냅니다. 비늘처럼 단단하게 빛을 튕겨내는 광경에 심사가 개운해집니다. 다시 책 속 세계로 돌아와 지은이와 동행합니다.
같이 놀라고 함께 답답해하고 간발의 간격을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쫓아갑니다. 아, 대단하다, 신기하다, 놀랍다, 감동적이다…. 쉬어가야 할 부분과 내달려야 할 대목이 시시때때로 반복됩니다. 어딘가에선 마음에 불이 켜지는 듯, 또 다른 어딘가에선 한없는 비감이 닥쳐옵니다. 어둠이 더욱 깊어지고 시곗바늘이 더 빠른 속도로 돌아갈 때 비로소 충만해지는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책 읽는 게 일이고 늘 읽는 책이지만 이럴 때가 있습니다. 기대하고 예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는 지은이의 사유와 기획, 과단과 도약. 이런 장면을 만날 때마다 문득 각성하고 문득 편안해집니다. 지난 화요일 읽은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또다른우주)에서 희미한 상처 위로 곧은 심지가 느껴졌습니다. 오늘(목요일) 새벽 마지막 장을 덮은 <사람입니다, 고객님>(창비)은 재기발랄한 호기심과 섬세한 정성이 사뭇 청량하게 다가왔습니다.
단단함이란 무엇인가, 어디에서 오는가, 한참 생각에 빠졌습니다. 저자의 유연한 의지는 무언가를 일깨운 것이 틀림없습니다. 닫힌 문이 열리고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시야가 미처 가닿지 않던 너머로 확장되는 것 같은, 감각…. 세계는 확연히 넓어지고 있는데, 여명은 아직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안도감이 몰려왔지만 짧은 토막잠조차 이룰 수 없었습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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