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포스트 시대의 지식 생산과 글쓰기
김성익·김신식·김정환·배주연·안은별·양명지·오혜진·윤보라·이승철·천주희 지음 l 돌베개 l 1만5000원 언제부턴가 대학원생, 강사, 교수 등 지식을 생산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잡은 ‘연구자’라는 말은 우리 시대 학계와 사회의 조건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강조하는 말이겠지만, 일각에선 그 말 속에서 저마다의 재생산 체계에 갇혀 어떤 ‘공통의 기반’을 잃어가고 있는 현상을 포착하기도 한다. <연구자의 탄생>은 인문사회 분야에서 ‘비판적 사회연구’의 전통에 속하는 젊은 연구자 10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10명의 위치는 박사과정생·연구교수·교수·독립연구자·평론가, 사회학·문학·여성학·인류학 등으로 다양하며, 이들의 글쓰기 역시 별다른 공통의 형식 없이 자유롭다.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공통의 질문뿐이다. “지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 천착하고 있는 주제는 무엇입니까? 왜 그 문제가 개인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문제의식은 어떤 개인(사)적·시대적 경험을 통해, 어떤 궤적을 거치며 형성된 것인가요?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규명 또는 해결하기 위해 어떤 연구(글쓰기)를 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작업을 통해 어떤 지적 또는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기를 희망하시는지요?” 이러한 질문은 ‘학문공동체의 붕괴’, ‘연구자의 전문화’, ‘논문 등으로 계량화된 재생산 체계’ 등 건조한 질문과 그에 상응하는 틀에 박힌 답을 떠나, 좀 더 개인적이지만 솔직하고 풍성한 연구자들의 내면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예컨대 문학평론가 오혜진은 10여년 전 중견 학자들의 인터뷰들을 담은 책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그린비)을 떠올리는데, 당시 인터뷰이들이 “소련 및 동구권의 붕괴, 맑스주의의 위기, 포스트 담론의 창궐”을 어떤 공통의 분기로 전제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금은 공통의 기반도 찾기 어려운 ‘포스트-포스트’ 시대일까. 국가 지원 프로젝트를 수행하건 대안공동체를 만들어 ‘체제 밖 연구’를 하건, “다만 분명한 것은 ‘모든 단단한 것들은 대기 중에 녹아버렸고’, 이제 우리는 광활하고도 혹독한 지식/교육‘시장’에 맨몸으로 내던져졌다는 것. 그렇게 가까스로 우리는 ‘연구자’인지 ‘콘텐츠 제공자’인지 ‘덕후’인지 모를 무언가가 되고 있는 중이다.” 문화연구자 겸 작가인 천주희는 “자기착취, 자기계발, 각자도생의 생존방식을 신자유주의적 주체라고 비판하는 연구자들이지만 정작 자신이 그런 삶을 체화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나름의 ‘연구’를 붙잡고 있는데, 위치와 경로가 어떻든 그 방향은 대개 비슷하다. “우리는 이곳을 완전히 떠나서 살 수는 없기에”(윤보라), 이들은 “무엇이 변화되길 바라는지에 대한 질문”(배주연)을 던지며 “대안적 언어와 장치들을 벼리는 작업”(이승철)에 매달리고 있다. “내가 힘겹게 살아가는 이 사회가 어떻게 나로 인해 초래되었는지 보는 것, 내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내가 만든 사회로부터 배우는 것”(김정환)이라고도 하겠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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