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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여론은 욕망으로 부풀어 가장 약한 개인을 친다

등록 2022-02-04 04:59수정 2022-02-04 10:48

[한겨레Book ] 이주혜가 다시 만난 여성

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l 북하우스 (2021)

지반, 러블리, 체육선생. 콜카타의 세 사람은 어느 날 빈민가에서 일어난 열차 테러 사건에 휘말려 삶이 크게 휘청인다. 그저 중산층이 되고 싶어 판매원으로 열심히 일하는 젊은 무슬림 여성 지반은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에스엔에스(SNS) 계정에 ‘나 같은 사람은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말’을 쓰고 만다. ‘경찰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면, 정부 역시 테러리스트라는 뜻 아닌가요?’ 며칠 후 지반은 ‘테러리스트’로 지목되어 경찰에 체포된다. 러블리는 트랜스 여성 ‘히즈라’로 구걸과 다름없는 ‘축복’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일상적인 배척과 차별 속에서도 연기 수업을 받으며 영화배우의 꿈을 키워나간다. 러블리는 연기에 필요할 것 같아 빈민가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지반에게 영어를 배워 왔다. 지반이 다녔던 여학교의 체육선생은 지반이 기소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때 체육에 소질을 보여 내심 장래를 기대했고 가끔 자신의 도시락을 나눠주기도 한 ‘자선 대상 학생’ 지반을 기억한다. 그러나 지반이 가정형편 때문에 말도 없이 학교를 그만둔 일에 대해서는 내심 무례한 행위로 여기고 있다. 느슨하게 이어졌던 세 사람은 열차 테러 사건에 연루되면서 각자의 삶을 걸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 휘말린다.

여자 감옥에 갇힌 지반은 절박하게 자신의 무죄를 호소하지만, 지반의 무죄를 믿는 사람들은 힘이 없고 힘이 있는 사람들은 지반을 믿지 않는다. 진실을 밝혀줄 거라 기대했던 기자는 지반의 진술을 교묘하게 짜깁기해 오히려 진실을 호도하는 기사를 쓰고 여론은 점점 지반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휘몰아친다. 심지어 체육선생마저 법정에 출두해 지반이 테러에 연루되었을 수도 있다고 증언하고 지반은 결국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이 소식에 충격을 받은 러블리는 자신만이 지반의 사형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대중을 향해 지반의 무죄를 호소한다. 그러나 러블리의 증언을 향한 대중의 관심은 러블리의 연기 동영상으로 옮겨가고 하루아침에 러블리를 스타로 만들어버린다. 체육선생은 국민복지당 대표의 눈에 들어 마을 집회의 연사로 활동하고 선거에서 승리한 당이 다수석을 확보하자 교육부 수석 자리에 오른다. 사형선고로부터 목숨을 지켜야 하는 절박한 지반, 지반을 향한 연민과 우애로 가득하지만 오래도록 꿈꿔왔던 영화배우의 꿈 앞에서 갈등하는 러블리, 평범한 소시민에서 정치계의 거물로 급변한 체육선생. 콜카타의 세 사람은 순식간에 뒤바뀐 운명 앞에서 각자의 선택을 해야 한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소설 안에서 실제로 지반의 명줄을 쥐고 흔드는 사람은 러블리도 체육선생도 아니다. 검사도 변호사도, 기자도 유력 정치인도 아니다. 그 주체는 다름 아닌 ‘대중’ 혹은 ‘여론’이다. 그러나 그 여론은 러블리나 체육선생, 검사나 변호사, 기자나 유력 정치인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여론은 이들의 욕망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욕망의 향방에 따라 진로를 바꾸는 태풍이 되어 가장 약한 개인을 친다. 소설 속에서 그 대상은 종교, 계급, 젠더의 측면에서 가장 약한 소수자인 빈민가의 젊은 무슬림 여성 지반이다. 소설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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