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정말 믿을 수 없습니다. 엉망진창입니다. 돈 적게 들이고 클릭 수 뽑아서 조사회사·보도회사가 주목 받고 돈 버는 것, 그뿐이죠. <신호와 소음>(더퀘스트)을 쓴 네이트 실버가 떠올랐습니다. 야구 승부와 카지노를 맞춰서 유명세를 탄 미국 통계 전문가 실버는 2008년과 2012년 미국 대선을 정확히 예측했습니다. 심지어 2012년 대선 때는 선거구 538곳의 승패까지 모두 적중했습니다.
비결은 책 제목에 있습니다. 소음을 잘 걷어내고 신호만 제대로 취하려 애쓴 결과. 요컨대, ‘주관을 배제하고 사실만 보라,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서 예측을 지속적으로 수정하라.’ “미래를 붙잡으려면 신중하게 예측하고 그 결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모아야 한다”고 실버는 조언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말라는 거죠.
이런 실버도, 트럼프 당선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신호와 소음> 개정판 서문은 실버의 반성문처럼 읽힙니다. 힐러리를 지지했던 실버는, 자신이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시인합니다. 그러면서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거론합니다. 이 위대한 행동경제학 창시자는, 경험에 의존하여 빠르게 생각하기보다 기억에 기대어 느리게 생각해야 조금이라도 합리적일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실버도 ‘느리게 생각하기’를 성찰합니다.
<신호와 소음> 서문에는 저널리즘 이야기도 나옵니다. ‘역사의 초고’라 불리는 저널리즘, 초고는 대개 엉망진창이어서 그렇다는 힐난. 저널리스트나 전문가들이 의심의 여지 없이 뭔가 떠들 때는, 확신에 차 있을수록 의심하고 걱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느리게, 그리고 의심하기. 일단 새해, 제가 쥔 격언입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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