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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에서 능동으로…스피노자 윤리학의 핵심

등록 2022-02-04 04:59수정 2022-02-04 10:25

정치철학자 진태원의 ‘윤리학’ 해설
10여년 시민 대상 강연 토대 삼아

유일한 실체 신에 대한 적합한 인식
행복·자유로 인도하는 이성의 역량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내에 설치된 정치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의 동상. “국가의 목적은 자유이다”라는, <신학정치론> 속 문구가 적혀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내에 설치된 정치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의 동상. “국가의 목적은 자유이다”라는, <신학정치론> 속 문구가 적혀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초판한정 오디오북usb 특별판)
진태원 지음 l 그린비 l 3만원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1632~1677)는 후대에 “야생의 별종”(안토니오 네그리)이라 불릴 정도로 서양철학사에서 독특한 사유를 펼쳤고, 시대 맥락에 따라 몇 번이나 새롭게 풀이됐다. 20세기 프랑스, 이탈리아 철학자들이 주도한 ‘스피노자 르네상스’의 영향 아래 정서(정동), 역량 등 스피노자 철학과 핵심 재료들은 현대 인문사회과학뿐 아니라 뇌과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다만 스피노자의 사유를 집약한 대표 저작인 <윤리학>(1677)은 난해할 뿐 아니라 만족스럽지 못한 번역 등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책으로 여겨져 왔다.

서양 근현대철학을 두루 공부해온 정치철학자 진태원(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이 최근 펴낸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은 이런 장벽을 최대한 낮춰 <윤리학>에 온전히 닿기 위한 길을 내어준다. 지은이는 스피노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지난 10여년 동안 대학 바깥의 강의실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윤리학> 강의를 해왔다.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인 이 책은 지은이가 직접 번역한 원문으로 <윤리학>의 용어와 개념, 논리 구조 등을 풀어나가는, “쉬우면서도 충실한 개론서”를 지향한다.

<윤리학>은 ‘기하학적인 순서에 따라 증명된’이란 부제처럼 정의, 공리, 요청, 정리와 따름정리 등 엄밀한 논증을 중심으로 하는 수학적 표현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처럼 수학적 논증을 통해 진리를 파악하고 설명하고자 시도한 대표적 사상가는 르네 데카르트(1596~1650)다. 16~17세기 서구 세계에서 일어난 자연철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그 배경에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양철학사에서 실체는 형상(eidos)과 질료(hyle)의 결합으로 이해되어왔으나, 데카르트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엄격하게 분리한 뒤 물질적인 것을 기하학적 관점으로 설명해내려는 기획을 폈다. 스피노자 역시 기본적으로는 근대 과학의 기획을 공유하지만 데카르트의 한계를 지적하며 아예 스스로 닦은 새로운 길로 더 나아갔다.

스피노자는 신을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자”라 정의한다. 이때 신은 기존의 창조주 또는 인격신 같은 존재가 아니며, 오늘날 ‘자연 그 자체’나 ‘우주’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체계”에 가깝게 규정된다. 세상의 모든 존재자들은 다른 존재자들과 어떤 인과관계를 맺는데, 신만이 자기 자신을 원인으로 갖기에 신이다. 이 때문에 스피노자의 신은 “영원하고 무한한 ‘속성’들로 구성된” 유일한 ‘실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속성들에 따라 무한하게 많은 것들의 원인이 된다. 인간이나 동물, 사물 같은 개별적 개체들은 “다른 것에 의해 존재할 수 있으며 또 다른 것에 의해 비로소 인식”되므로 실체가 아니라 실체가 ‘변용’(affectio)된, 곧 신의 어떤 한 속성에서 따라 나온 ‘양태’(modus)들로 규정된다. 스피노자가 “독특한 실재”라고도 부르는 이 유한한 존재자들은 ‘나눌 수 없는’ 확고한 개체들이 아니라 “공동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다수”의 복합체다. 이들은 “동일한 운동과 정지의 관계”가 유지되는 한 동일한 개체로 유지되며, “자기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용하고 또 변용된다. 이들은 자기 존재를 보존하기 위한 역량을 자신의 원인이 되는 신으로부터 나눠 가졌는데,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 개념으로 꼽히는 ‘코나투스’(conatus)다.

&lt;스피노자 윤리학 수업&gt;은 정치철학자 진태원(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이 지난 10여년 동안 대학 바깥의 강의실에서 시민 독자들을 상대로 해온 &lt;윤리학&gt; 강의의 한 결과물이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은 정치철학자 진태원(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이 지난 10여년 동안 대학 바깥의 강의실에서 시민 독자들을 상대로 해온 <윤리학> 강의의 한 결과물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코나투스 자체는 의식적이고 지향적인 활동이 아니다. 그러나 돌덩이와 달리 “인간의 경우 코나투스의 작용은 목적론적이고 지향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스피노자는 자기 보존을 위한 ‘욕망’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라고 본다. 예컨대 자신에게 이로운 대상을 만나 신체의 역량이 증대되면 욕망이 ‘기쁨’으로 바뀌고, 해로운 대상을 만나 신체의 역량이 감소되면 ‘슬픔’으로 바뀐다. 이 세 가지 기본적인 일차 정서로부터 인간의 온갖 정서들이 파생되어 나온다. 관건은 이 정서들을 어떻게 제어하고 억제할 수 있느냐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점은, 스피노자는 정신과 신체를 나누고 정신이 신체를 다스리는, 곧 욕망과 정서를 중단하거나 초월하는 식의 전략을 채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 존재는 변용하거나 변용됨으로써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 변용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정서는 억제되는 그 정서와 상반되고 더 강한 다른 정서가 아니고서는 억제될 수도 제거될 수도 없다.”

그 대신 스피노자가 설정하는 핵심 범주는 ‘능동’과 ‘수동’이다. “우리가 우리의 행위에 대해 적합한 원인이 되는 경우”, 곧 어떤 결과가 이를 산출한 원인 자신에 의해 명석·판명하고 온전하게 설명될 수 있을 때 스피노자는 능동적이라고 본다. 반면 외부 원인이 더욱 커져 우리가 결과의 일부만을 설명하게 될수록 수동성이 커진다. 필연적인 인과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아래에서, 오직 가능한 것은 인과관계들에 대한 적합한 인식을 통해 외부 대상이 우리에게 산출하는 정서의 힘에 좌우되는 수동적인 상태(예속)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역량에 기반해 정서들을 질서 지울 수 있는 능동적인 상태(자유)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신에 대하여’(1부)로 시작해 ‘지성의 역량에 대하여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5부)로 흐르는 <윤리학>의 전체 구성 역시 이런 나아감을 함축하고 있다. 결국 스피노자 <윤리학>을 관통하는 관심사는 “인간이 어떻게 행복을 이룰 수 있냐”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를 이리저리 유혹하고 이끌어가는 상상과 욕망의 힘을 얼마나 정확히 인식하고 조절할 수 있느냐는 이성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지은이는 풀이한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수동성에서 벗어나 능동성으로 더 많이 이행할수록 ‘정념적 사랑’에 그치지 않고 ‘신을 향한 사랑’을 거쳐 ‘신의 지적 사랑’에까지 도달할 것이라 본다. 지극한 단계인 ‘신의 지적 사랑’에 대해, 지은이는 “개인의 주체화 또는 능동화의 운동”과 함께 “각각의 개체들이 다른 개체들과의 관계에서 분리되어 고립되는 것과 상반되는 운동, 말하자면 탈개체화의 운동 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타자들과의 관계 맺음의 운동”도 의미한다고 짚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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