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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와 루만 오간, 사회철학자의 치열한 발자취

등록 2022-02-11 04:59수정 2022-02-11 10:22

1주기 맞이한 고 장춘익 교수 추념
2권짜리 저작집 간행 및 학술대회
진보적 실천 전제로 비판이론 모색
생활세계 속 실천적 합리성에 주목
왼쪽부터 독일 출신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 독일 출신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 위키미디어 코먼스
왼쪽부터 독일 출신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 독일 출신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 위키미디어 코먼스

비판과 체계: 하버마스와 루만
근대성과 계몽: 모더니티의 미래
장춘익 지음 l 21세기북스 l 각 권 3만8000원

지난해 2월 세상을 떠난 장춘익(1959~2021) 한림대 철학과 교수는 독일 근현대 사상을 두루 공부하며 실천과 맞닿을 수 있는 근대 사회에 대한 이론을 깊이 탐색해온 학자다. 20세기 독일 사회이론의 두 거장으론 단연 위르겐 하버마스(92)와 니클라스 루만(1927~1998)이 꼽히는데, 장춘익의 업적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로 혼자 힘으로 이 두 학자의 주저를 모두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그가 번역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나남, 2006년), 루만의 <사회의 사회>(새물결, 2012년)는 두 대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는 등 국내 학계의 튼튼한 토대가 됐다.

1주기를 맞아 장춘익이 썼던 글들을 모은 ‘장춘익의 사회철학’ 두 권이 출간됐다. 단독 저작을 낸 적이 없었기에, 이 책들은 장춘익이 추구했던 사회철학의 지향과 배경, 연구의 궤적 등을 접할 수 있는 주된 통로가 될 전망이다. 1권 <비판과 체계>는 장춘익이 하버마스와 루만, 칸트, 헤겔, 마르크스, 지멜 등 독일 사회철학을 대표하는 주된 사상가들을 탐구한 내용을 담고 있다. 2권 <근대성과 계몽>은 근대성과 합리성, 생태, 폭력, 계몽, 평등, 복지 등 개별 주제들을 중심으로 쓴 글들을 모아 담았다. 간행위원회는 장춘익이 “여러 위대한 사상가들의 사유를 쉬운 우리말로 소개할 뿐 아니라, ‘비판과 체계’로 압축될 수 있는 복합적인 사회철학적 문제의식을 일관되게 견지해왔다”고 밝혔다. 간행위원회는 11일 ‘사회와철학연구회’와 함께 ‘사회철학의 길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학술대회도 열었다.

두 권의 책에서 접할 수 있는 장춘익의 발자취는 진보적인 실천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이론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국외 이론들을 탐색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던 우리 학자의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기본적으로 하버마스를 연구의 중심에 두었고, 1990년대 중반 하버마스에 대한 국내 학계의 유례없는 관심이 폭발했을 때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 배경에는 퇴조하던 마르크스주의의 공백을 메워줄 이론적 대안으로서의 기대가 있었다. 장춘익의 경우,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경험적 분석(학문성)과 비판적 관점 사이의 상호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하버마스를 “가장 존중할 만한 이론”으로 선택했다. 다만 하버마스가 “비판의 기준이 되는 규범의 정당화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진보적 실천으로 향하는 동기를 활성화하는 문제는 공백으로 남겨”뒀다고 지적했다.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은 합리성에 기반해 근대 사회를 설명해내고 여기에 언어적 의사소통 개념으로 비판적인 문제 설정을 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이상 실천과 관련한 영역에서는 보완할 것들이 많다는 얘기다. “어떤 규범의 합리성에 대한 인식이 곧 그 규범을 매개로 하는 연대성을 창출하며 사회적 실천으로 이끌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고 장춘익 한림대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찍은 사진. 장춘익은 하버마스, 루만 등 독일 근현대 사상으로부터 실천을 담보할 수 있는 사회이론을 두루 탐색했다. ⓒ신혜선, 탁선미 한양대 교수 제공
고 장춘익 한림대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찍은 사진. 장춘익은 하버마스, 루만 등 독일 근현대 사상으로부터 실천을 담보할 수 있는 사회이론을 두루 탐색했다. ⓒ신혜선, 탁선미 한양대 교수 제공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맡은 정성훈(인천대)은, 이런 차원에서 장춘익이 비판(하버마스)에서 체계(루만)로, 또다시 체계에서 비판으로 오갔다고 본다. 장춘익은 하버마스에 대해 “강한 평등주의의 약한 옹호”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정성훈은 이를 “강한 규범적 요구를 갖고 있음에도 이를 뒷받침할 제도의 힘에 대해 상대적으로 주목하지 못하고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풀이했다. 하버마스 자신처럼 장춘익은 하버마스를 보완하기 위해 근대 사회가 체계들의 기능적 분화로 이뤄져 있음을 강조한 루만의 사회이론에 관심을 가졌는데, 앞선 평등에 대한 규정을 적용한다면 루만은 “약한 평등주의의 강한 옹호”로 규정된다. 기능체계로 이해된 평등은 더없이 강한 제도적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성훈은 “(장춘익은) 칸트나 하버마스보다 더 탈형이상학적이며 근대 사회의 제도들에 주목하는 도덕이론을 참조해 윤리학을 재구성해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존의 접근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장춘익은 루만을 연구하며 ‘도덕의 반성이론으로서의 윤리학’, ‘문명화된 윤리학’ 등 제도와 인간의식을 연결 지을 수 있는 대목들에 주력하기도 했다. 기능주의적이라 불리는 체계이론으로부터 어떤 “비판적 잠재력”을 찾아내려 시도했던 셈이다.

이후 장춘익은 다시 ‘체계에서 비판으로’ 되돌아온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2010년대 후반 발표한 논문 등으로부터 그가 지니고 있었던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코뮌주의를 비판하며 공동체 개념을 다시 생각하는 2016년 논문, 게오르크 지멜의 도덕사회학과 사회주의론에 대한 2019년 두 논문, 하버마스의 후기 대작 <또 하나의 철학사>(2019)를 다룬 2020년 논문 등을 보면, 장춘익은 하버마스와 루만 등을 넘나들며 모든 인간이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어떤 실천적 합리성이, 또 어떤 근거와 제도가 필요한지 따져 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성훈은 루만 연구 이후 장춘익의 기본 입장에 대해 “제도 혹은 체계의 차원에서는 루만의 합리성 개념에 따른 체계합리성과 그로부터 발현될 수 있는 생태학적 합리성에 기대를 걸고, 일상적 관계 혹은 ‘생활세계’에서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기대를 걸겠다는 것”이라고 봤다. 단순히 말해, 어떤 하나의 합리성으로 여러 사회이론들을 꿰어내려 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기반을 가진 합리성 개념들을 함께 쓰는 것이 실천적 차원에서는 가장 낫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예컨대 하버마스의 <또 하나의 철학사>에 대한 논문에서 장춘익은 과거 언어철학에 과도하게 의존하던 하버마스가 역사적·사회문화적 학습과정의 산물로서 실천적 합리성을 파악하는 등 ‘계보학적’ 전환을 이룬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여기서 장춘익은 “비이기적이고 수평적인 관계의 경험이 보편주의적 도덕의식의 형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반”이며, “비이기적 관계가 규범적 의식을, 수평적 관계가 보편주의적 의식을 가질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많은 물음들이 제기될 수 있으나, 안타깝게도 이젠 본인이 답할 수 없게 됐다. 간행위원회와 학술대회 관계자들은 장춘익의 사회철학이 “더 많은 장춘익들”의 새로운 학문적 소통과 가치의 연대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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