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3월8일)는 세계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그날, 20대 여성이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려 숨진 참혹한 사건이 알려집니다. 어제(3월9일)는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라는 대통령이 당선됐고, 오늘(3월10일)은 젊은 여성들의 표심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붉은 도장 찍힌 한 표 한 표에 담긴 분노와 비탄, 공포와 절망이 메아리칩니다.
1908년 여성 노동자 15만여명이 미국 뉴욕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작업장 화재로 여성 노동자가 숨지자 들고일어난 터였습니다. 이들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노동환경 개선, 여성 투표권 쟁취를 목놓아 외쳤습니다. 1차 대전 중이던 1917년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은 ‘빵과 평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파업을 벌였습니다. 여성의 날의 뿌리입니다.
미국 여성들은 1920년에 참정권을 얻고, 러시아·독일·캐나다·덴마크 여성들은 이보다 2~3년 앞서 참정권을 쟁취합니다. 영국에서는 1928년 총파업 끝에 여성 참정권이 보장됩니다. 여성들이 평등한 자유와 권리를 요구하고 쟁취해온 역사의 길목 곳곳에는 피와 땀이 서려 있습니다.
30년 전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라는 인식에 머물던 스무살 남짓의 한 남성은, ‘또 하나의 문화’를 통해 ‘페미니즘’을 알아갔습니다. 오늘은 ‘또문’ 동인 고정희(1948~1991)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를 함께 읽고 싶습니다. “상한 갈대라도 (…)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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