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책거리] 위대한 실패

등록 2022-03-18 04:59수정 2022-03-18 09:22

[한겨레BOOK]
다국적 탐사대가 발굴한 인듀어런스호의 선미 부분. 유튜브(Marine Technology TV) 화면 갈무리
다국적 탐사대가 발굴한 인듀어런스호의 선미 부분. 유튜브(Marine Technology TV) 화면 갈무리

어니스트 섀클턴(1874~1922)은 절치부심합니다. 로버트 스콧(1868~1912)과 남극 탐험에 나섰다가 중도 하차한 터였습니다. 로알 아문센(1872~1928)에게 최초 남극점 정복을 빼앗기고 스콧은 탐험 도중 숨집니다. 섀클턴은 목조선을 구해 ‘인듀어런스’라고 이름 붙이고 1914년 남극 대륙 횡단에 도전합니다.

출정 한 달 만에 부빙군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빠집니다. 배는 열 달 만에 난파하고, 얼음 위에 갇힌 섀클턴과 대원들은 6개월 동안 영하 30도 추위를 버텨냅니다. 펭귄과 바다표범에 썰매 끄는 개까지 잡아먹으며 살아냅니다.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뜨인돌, 2001)에 기록된 그들의 고행은 상상을 넘어섭니다.

1915년 인듀어런스호가 부빙군에 갇힌 모습. 뜨인돌 제공
1915년 인듀어런스호가 부빙군에 갇힌 모습. 뜨인돌 제공

살아남을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27명 대원 전원이 생존합니다. 배가 난파되던 가장 절망적인 날, 섀클턴은 특별 만찬을 베풉니다. 뻔히 길이 없음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답사를 시도합니다. 대원들과 똑같이 먹고 입고 일합니다. 종국엔 섀클턴을 포함한 6명 선발대가 뗏목을 타고 구조요청을 위해 떠납니다.

섀클턴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일기장에는 신 앞의 나약한 존재, 통제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강박관념, 불만과 불안이 확산하지 않도록 대원들을 경계하고 관리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그 역시 한없이 흔들리는 존재였습니다.

인듀어런스호와 탐험대원들. 뜨인돌 제공
인듀어런스호와 탐험대원들. 뜨인돌 제공

섀클턴은 1922년 또다시 남극 원정에 나섰다가 사우스조지아의 그리트비건에서 쓰러져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최근 ‘인듀어런스’ 호 발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 목조선은 남극해 3000m 깊이에 107년 동안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다시 찾아보기 힘든, 위대한 실패의 흔적입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흥행 파죽지세 ‘베테랑2’…엇갈리는 평가에 감독이 답했다 1.

흥행 파죽지세 ‘베테랑2’…엇갈리는 평가에 감독이 답했다

천만 영화 ‘파묘’보다 더 대단한 웹툰이 있다고? 2.

천만 영화 ‘파묘’보다 더 대단한 웹툰이 있다고?

19년 만에 돌아온 ‘김삼순’…2030은 왜 옛 드라마에 빠졌나 3.

19년 만에 돌아온 ‘김삼순’…2030은 왜 옛 드라마에 빠졌나

“학폭 당했다”던 곽튜브, 왕따 가해 의혹 이나은 옹호하다 “사과” 4.

“학폭 당했다”던 곽튜브, 왕따 가해 의혹 이나은 옹호하다 “사과”

‘진취적’ 왕후를 비추는 ‘퇴행적’ 카메라…우씨왕후 5.

‘진취적’ 왕후를 비추는 ‘퇴행적’ 카메라…우씨왕후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