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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렌트 정치사상의 핵, 유대인 문제

등록 2022-03-18 04:59수정 2022-03-18 10:09

[한겨레BOOK]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 l 한길사 l 4만8000원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가 쓴 글들 가운데 이른바 ‘유대인 문제’와 관련된 글들만 추려 모은 선집이다. 인간다운 삶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정치 행위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한 아렌트에게 ‘정치 없는 민족’으로서 유대인 문제는 그의 정치 사상에서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위상을 차지한다. 독일의 ‘동화’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나치에 의해 추방되고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는 등 그 스스로가 ‘쫓겨난 자’(‘파리아’)였다. 유대인 문제에 대한 아렌트의 글들은 그의 사후 3년 뒤인 1978년 <파리아로서 유대인>으로 먼저 묶여서 출간됐고, 그 뒤로 그 중요성이 날로 주목받아 2007년에 더 종합적인 성격을 지닌 이 선집이 나왔다.

아렌트는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난 뒤 라헬 파른하겐이란 유대인 여성의 전기를 집필하면서 “유대인성이란 ‘주어진 것’이라는 점을 절실하게 깨달”았고, 1930년대 초반 시온주의 운동에 참여하면서 유대인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했다. 서유럽 계몽주의는 나라 없는 민족인 유대인에게도 해방을 약속했지만, 실제로 유대인들은 “해방이 보장한 자유가 얼마나 모호하고 동화가 드러내는 평등의 약속이 얼마나 기만적인가” 경험해야 했다.

1958년에 사진으로 찍힌 한나 아렌트의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1958년에 사진으로 찍힌 한나 아렌트의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무엇보다 아렌트는 유대인의 자기 인식을 문제 삼았고, 그의 분석은 ‘유대인 문제’, ‘반유대주의’, ‘파리아로서 유대인: 숨겨진 전통’ 등 이 책에 실린 대표적인 글들에 모두 녹아 있다. 서문을 쓴 공동 편집자 론 펠드먼은, 그 분석의 핵심에는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정치 자체를 회피해온 유대인 특유의 ‘무세계성’이 있다고 짚는다. 비유대인 사회 속 유대인들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있는데, 그들 중 다수는 “세계에 대한 배려의 부담이 없다는 중대한 특권”을 활용해 이방인 세계로 뛰어들어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성공하고자 돌진하는 ‘벼락출세자’의 모습을 보인다. 반면 그런 무세계적 조건을 직시하는 사유에 이른 소수는, 자신의 유대인 유산과 유럽인 유산을 모두 수용하면서도 이를 비판할 수 있는 ‘의식적인 파리아’가 될 수 있었다.

유대인 문제에 대한 이 같은 아렌트의 통찰은 정치의 부재가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질 현대 사회와 문명 전체에 대한 경고와 긴밀하게 맞닿는다. 론 펠드먼은 “아렌트는 근대 어느 다른 민족보다 유대인에게 특징적으로 더 많이 드러난 무세계성의 조건이 우리 시대 일반화된 조건이 될 수도 있음을 가장 두려워했다”고 풀이했다.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의식적인 파리아’가 된 베르나르 라자르로부터 받은 깊은 영향, 유럽식 국민국가를 만드는 데 몰두하여 반유대주의를 회피해버린 테오도르 헤르츨의 ‘정치적’ 시온주의에 대한 비판 등 흥미로운 대목들이 많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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