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홍승은의 소란한 문장들
미셸 렌트 허슈 지음, 정은주 옮김 l 마티(2022) “미용 때문이죠? 젊은 여성들은 피부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예민하게 반응하더라고요.” 서울의 한 병원, 의사는 진료실에 들어간 나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아니요. 간지러워서 새벽에 깨고, 조금만 스쳐도 쓸리는 고통 때문에 생활이 힘들어요.” 내 대답에 의사는 알았다며 약을 처방해줬다. 처방전에는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제, 위장 보호제가 적혀 있었다. 몇 년간 입에 달고 산 약들을 또 처방받은 거다. 지난 병원들과 이번 병원의 차이는 내 고통을 노골적으로 ‘젊은 여자의 유난’으로 표현한 의사의 태도였다. 처음 피부에 붉은 병변이 올라 온 건 3년 전 여름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염증은 올라왔다 내려가길 반복했고, 그만큼 여러 병원을 왕복했다. 염증은 주로 몸통 앞쪽에 생겼다. 가슴 사이나 배꼽에서 시작해 주위로 번졌다. 병변이 올라올 때는 하루빨리 가라앉기만 바라는데, 가라앉은 자리에 남은 갈색 흉터를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흉터가 연해질까? 앞으로 내 벗은 몸을 볼 사람은 이 흔적을 어떻게 생각할까?’ 순간 2년 전 들은 의사의 말이 떠오른다. “미용 때문이죠?” 미용 때문에 예민하다는 시선에 반대하면서도 흉터 있는 몸을 긍정하지 못하는 내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내 성별, 나이, 성적 지향과 관계 지향, 그리고 아픈 몸의 관계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나 매끄럽게 정돈하기 어려웠다. 나를 의심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읽어야 했다. 비슷한 고통과 고민을 안은 작가의 책을 찾았다. 그 여정에서 미셸 렌트 허슈의 <젊고 아픈 여자들>을 만났다. “그가 내 흉터를 봐야 하는데.”(13쪽)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녀는 호감 가는 상대를 앞에 두고 몇 시간 뒤 침대 위에서 자기 몸이 어떻게 보일지 걱정한다. 바 조명이 어두워서 다행이라고 안도한다. 그 솔직한 고민이 반가웠다. 작가는 이십대부터 갑상샘암과 고관절 수술, 비만세포 활성화 증후군 등 각종 질병을 겪었다. 경험을 되짚어보니 젊은 여성인 자신의 위치와 질병 경험이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자기와 다른 인종, 계급, 성적 지향을 가진 젊고 아픈 여성은 어떤지 궁금했다. 궁금증을 안고 글을 썼다. 아픈 몸으로 욕망 받길 바라는 마음과 오랜 시간 여성을 맹목적으로 대상화한 시선을 거부하는 이야기. 의료 시스템이 주로 백인, 중산층, 비장애인, 비트랜스젠더, 특정 연령대를 위주로 설계되어서 ‘표준’에 속하지 않는 이들은 소외되어 온 이야기. 계속 일하기 위해 아픔을 숨기거나 증명해야 하는 이야기. 아플수록 관계가 더 절실해지는데, 아파서 관계 유지를 위한 에너지가 없는 이야기. 비출산을 지향해도 임신을 강요 받는 젊고 아픈 여성과 특정 병과 관계 형태 때문에 임신이 금지되는 이들의 이야기. 위치마다 다양한 증언이 나오기에 책은 매끄러운 도로처럼 읽히지 않는다. 어떤 샛길이 나올지 모르는 산길처럼 읽힌다. 그 길에 정답은 없지만, 단단한 이정표는 있다. “나는 각자가 원하는 삶의 확고한 옹호자다. 파트너가 있든 없든 아니면 두 명 이상이든, 젠더와 성적 정체성이 어떠하든 간에 나는 그 삶의 편이다.”(48쪽) 매끄러운 아픔이 없듯, 몸을 둘러싼 현실도 매끄럽지 않다. 삐걱대는 몸과 욕망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길에서 우리는 서로의 옹호자가 된다. 홍승은 집필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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