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입니다. 날씨는 우중충하네요. 춘삼월도 머잖았는데 바람은 요 며칠 매섭습니다. 뒤숭숭합니다. 뉴스를 볼수록 더 그렇습니다. <뉴스 다이어트>(갤리온, 2020)가 필요합니다. 각종 미디어를 빨아들인 스마트폰이 ‘스몸비’들의 뉴스 과소비를 조장합니다. 뉴스 폭포가 뇌수를 잠식하면 제정신일 수가 없는 겁니다.
책을 보다가 번뜩, 정신을 차립니다. <권진규>(29면 참조)에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궁핍과 냉대, 빈곤과 좌절 속에 예술혼을 끝내 꺾지 않은 예술가. 그의 작품들은 견결한 아름다움을 고요히 드러냅니다. 특히 말년에 창작한 <불상>들이 마음에 자리 잡습니다.
51년 전, 정확히 이맘때, 권진규는 한 달간 양산 통도사 수도암에 머뭅니다. ‘창조적 파괴’로 불상을 조각합니다. 몸은 석가여래인데 머리는 미륵보살입니다. 석가여래는 부처가 된 석가모니입니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가부좌를 튼 다리 위에 얹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다섯 손가락을 모아 땅을 가리킵니다. 항마촉지인, 석가모니가 깨달은 순간이죠.
미륵보살은 미래에 깨달음을 얻으리라고 석가여래로부터 예언을 받은, 도솔천에 머무는 존재입니다. 아직 오직 않은 미륵보살은 미래불입니다. 석가여래가 구제하지 못한 중생들을, 미륵보살이 깨달은 뒤 남김없이 구제하리라고 믿는 미륵신앙의 구세주.
미륵보살의 머리를 새기고 깎으며 권진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목각 불상을 모본으로 테라코타 불상을 만들고 또다시 테라코타 거푸집으로 건칠 불상을 만들고, 만들고 다시 만들고 또 만들던 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51년 전 그날처럼, 어김없이, 봄은 오고 있습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불상>, 1971년, 나무에 채색. ©권진규기념사업회·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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