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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가 남긴 첫 발자국

등록 2022-03-25 05:00수정 2022-03-25 10:03

[한겨레BOOK]

민주주의 이론을 위한 서설
50주년 기념 증보판
로버트 달 지음, 한상정 옮김 l 후마니타스 l 1만7000원

<민주주의 이론을 위한 서설>은 현대 민주주의 이론의 거장으로 꼽히는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1915~2014)의 초기 저작이다. 민주주의를 이론적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달의 오랜 여정은 이 책으로 첫발을 떼어 마지막 저작인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2006)로 이어졌다. 출간 50년을 맞아 두 편의 논문을 서문과 후기로 붙였던 이 책의 2006년 증보판이 최근 한국어로 번역됐다.

제목에 ‘서설’이란 표현이 들어간 데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에서 지은이는 미국의 정치 체제(또는 정치과정)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바탕으로 삼아 민주주의를 ‘이론’으로 다루기 위해 필요한 고민의 틀을 제시한다. 그 중심에는 민주주의라는 같은 용어 아래에서 한쪽은 ‘다수의 절대 주권’을, 다른 한쪽은 ‘소수의 절대 권리’를 강조하며 대립하는 전선이 있다. 전자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꼽히는 제임스 매디슨의 민주주의 이론으로, 지은이는 이 ‘매디슨주의적 민주주의’로부터 다수가 무제한적 권력을 휘둘러 소수의 권리를 억압할 위험을 가장 우려하고 이를 견제하기 위한 헌법적·법률적·제도적 견제 장치 등 ‘입헌적 규칙들’을 만들어내는 데 몰두했던 입장을 읽어냈다. 반대편에는 ‘민중 민주주의’가 있다. 정치적 평등과 인민주권을 강조하는 등 ‘다수에 의한 지배’, 곧 더 많은 수가 선호하는 방안을 채택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 로버트 달(1915~2014)이 강의하고 있는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 로버트 달(1915~2014)이 강의하고 있는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은이가 볼 때 모순된 목표들을 ‘타협’이란 말로 얽어놓은 매디슨주의적 민주주의는 이론으로선 “자격 미달”에 가깝다. 정치적 평등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고 이상이다. 그러나 이를 규범적으로 재정의하기만 할 뿐인 민중 민주주의는 현실 세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해줄 수 없다. “가장 선호되는” 것과 “가장 많은 수에 의해 선호되는” 것을 구분하기 어려운, 현실 정치에서의 최대 난점 등도 고려되지 않는다. 양쪽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발판으로, 지은이는 ‘다수 또는 소수의 지배’가 아니라 ‘소수들의 지배’에 주목하고, 이를 바탕으로 삼는 ‘다두정’(polyarchy) 이론을 제시한다. “사회에는 여러 요구들과 사회집단들이 존재하며, 그 사이의 힘의 균형이 중요하다. 즉 현실에서 다수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소수들의 연합, 상호 견제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또 ‘입헌적’ 조건에만 집착했던 매디슨주의와 달리 다두제 이론은 민주주의에 필요한 ‘사회적’ 조건들을 가장 결정적인 변수로 삼는다고도 지적하는데, 이는 단지 정치제도가 아닌 사회 전체의 역동성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 엔진임을 일깨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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