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설 ‘페스트의 밤’ 작가 오르한 파무크 ②
“죽을 때까지 여성 주인공이 설명하는 소설 쓸 것”
“죽음은 우리에게 형이상학적인 것을 사고하게 해”
“민족 생성에서 언어의 중요성도 말하고 싶었어”
“푸틴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중세의 회귀’”
“죽을 때까지 여성 주인공이 설명하는 소설 쓸 것”
“죽음은 우리에게 형이상학적인 것을 사고하게 해”
“민족 생성에서 언어의 중요성도 말하고 싶었어”
“푸틴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중세의 회귀’”
소설 <페스트의 밤>의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이 작품을 번역한 이난아 한국외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전임 연구원이 <한겨레>를 비롯한 한국 언론의 서면 질문을 취합해 지난 16일 파무크와 줌 인터뷰를 했다.

오르한 파무크가 지난 16일 번역자 이난아씨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https://bit.ly/3JMRNtM) ―그와 관련해, 섬의 후손이 섬의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미나 민게를리는 100년 전 이 모든 사건을 경험한 오스만 제국 왕가 일원의 증손녀입니다. 저는 먼저 오스만 제국의 귀족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미나 민게를리를 통해, 즉 여성 주인공을 통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입니다. 그곳 대학의 자유주의 성향의 교수들 모두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약간은 그들의 ‘정치적 정확성’을 희화화하고 싶었습니다.” ―미나 민게를리가 오르한 파무크와 아는 사이인 것처럼 묘사되는데, 파무크 자신이 소설에 등장해서 작가의 유머 감각이 느껴지기도 했지요. 자신을 소설에 등장시킨 까닭이 있는지요? “큰 이유는 없습니다. 저의 모든 소설에서 저 자신을 등장시키는 기법을 적용하고 있죠. 히치콕이 자신이 제작한 영화에서 한 번 쓱 등장하는데,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저와 이야기 중인 번역가 이난아씨가 웃는 것처럼 독자들이 미소 짓는 것을 보고 싶고, 독자들에게, ‘독자 여러분, 이것은 오르한 파무크가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지나치게 역사에 몰입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고요.” ―페스트가 창궐한 1901년 민게르섬에 대한 중요한 기록을 남긴 사람(파키제 술탄)도 21세기에 이를 역사소설 형태로 쓴 사람(미나 민게를리)도 모두 여성입니다. 왜 여성인가요? “작가로서 결정을 한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제 작품에서 여성 주인공이 사건의 내부에서 모든 것을 보고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는 소설을 쓸 예정입니다. 그래서 미나 민게를리를 택했습니다. 저는 제 삶의 이상이 있습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전적으로 여성의 눈으로 서술한 소설 한 편을 쓸 생각입니다. 제 소설 <내 이름은 빨강>도 남편을 여읜 여성 세큐레의 시선으로, 그 관점으로 서술되고 있죠. 저는 중동 지역 출신 남성입니다. 중동 남성들의 전형적이고 형편없는 사고들이 안타깝지만 물론 저에게도 그런 부분이 존재합니다. 이런 제 모습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 자크 루소가 이런 말을 했지요. ‘자신의 어머니와 다투는 남자는 항상 부당하다.’ 저는 이 말을 저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비평가들과 싸우는 중동 남성들은 항상 부당합니다.(웃음)” ―이번 소설 속 배경인 민게르섬은 작가가 창조한 공간인데,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셨는지요? “저는 고립된 공간을 좋아합니다. 마치 <눈>의 카르스처럼, <페스트의 밤>의 민게르섬처럼 바다가 있는 지형을요. 제가 민게르섬을 쓸 때 영감을 받았던 섬 세 곳이 있습니다. 모두 내가 살았던 작은 섬들입니다.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섬은 크레타섬입니다. 두번째 섬은 제가 여름철을 보내는 헤이벨리섬과 비윅아다섬, 즉 이스탄불 행정구역 안에 있는 섬입니다. 이 섬들을 좋아합니다. 남서풍이 불면 가을에 휴교를 합니다. 저는 섬 안에서 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을 저는 좋아합니다. 세번째 섬은, 저는 5월에 터키 남부에 있는 도시 카쉬에 가는데, 이 카쉬 맞은편에 그리스령 메이스섬이 있습니다. 이 메이스섬, 즉 카스텔로리조(소설에서 나오는 그리스 도데카네스 제도의 한 섬)는 붉은 성이라는 의미지요. 얼마나 작은 섬인지 인구 역시 적답니다. 이곳은 그리스의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죠. 메이스섬 사람들은 여름에 토마토와 가지를 사려고 터키에 옵니다.저는 이렇듯 아주 작은 나라, 작은 장소들을 좋아합니다. 몬테네그로 같은 곳 말입니다. 섬 전체 인구가 60만명 정도랍니다. 작은 장소들은 제게 동화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페스트의 밤>에서도 이런 동화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으면 했지요.” ―4년 전 세계보건기구(WHO)는 연구 개발이 필요한 질환 목록에 미지의 전염병을 뜻하는 ‘질병X’를 담았습니다. 전염병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테러리스트의 공격과도 같다는 질병 학자의 견해도 있었지요. 팬데믹 이후 인류의 삶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팬데믹 이후 인류의 삶은 제 생각에는 두 가지 형태로 변할 것 같습니다. 먼저 건축적인 측면입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방, 우리가 서로 가깝게 붙어 있어야 하는 작은 장소들, 식당들, 창문이 없는 곳은 그 중요성이 사라질 것입니다. 터키에서 영화관은 아주 치명타를 입었죠. 팬데믹 시기에 프랑스에 있었는데 그들은 여전히 영화관에 가더군요. 영화관, 연극장, 행위 예술 등은 치명타를 겪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보십시오. 난아씨는 인터뷰를 하러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모든 직장에서는 월요일에 주간 회의를 하지요, 그 회의들 대부분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지만요.(웃음) 이러한 모임도 줄어들고 대신 화상 회의를 진행하겠지요. 사람들은 재택근무를 더 많이 할 것이기에 집 안의 질서가 더 중요하게 되고 직장보다는 집에 투자하는 돈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천재지변에 가까운 팬데믹에 인재인 전쟁의 비극까지 더해졌습니다. 인공지능(AI), 우주여행을 말하는 2020년대에 왜 인류는 과거의 경험에서 진일보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지혜를 모아야 할까요? “먼저 왜 과거의 경험에서 진일보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하고 싶습니다. 베를린의 벽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났을 때 폴란드, 우크라이나, 또 다른 나라들은 서구를 선택했습니다. 자유 민주주의를 택했지요. 이렇게 되자 러시아는, 옛 이름으론 소비에트 연방인 자신들의 식민지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버렸지요. 과거 세계는 미국과 러시아로 양극화되어 있었습니다. 중국도 있었지만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지요. 이 두 나라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핵전쟁을 막기 위해 두 나라는 ‘이곳은 내 구역, 저 곳은 네 구역, 넌 내 일에 간섭하지 마, 나도 너를 간섭하지 않을 테니’라고 암묵적으로 합의했지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과거의 많은 소비에트 연방 나라들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서구, 자유 민주주의 쪽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러시아에 핵무기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어요. 이제는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푸틴은 아주 원시적이고 나쁜 방법으로, ‘내 손에 핵이 있어, 그곳은 과거에 내 구역이었거든, 거기에 간섭하지 마, 핵을 떨어뜨릴 수도 있으니까’라는 메시지를 전해 우리를 두렵게 했지요. 과거의 세계로 퇴보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모순이 있습니다.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각국이 다른 나라의 상황에 간섭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다, 거기에 러시아인들이 있다’라고 해도 미국이 전투기를 띄우지 않고 있지요.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트위터에 올라온 영상,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련한 우크라이나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질서로 되돌아갔기 때문에 이 고통을 받고 있지요. 푸틴의 공격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주 원시적이며, 중세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세의 회귀’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아주 유명한 글이 있지요. 어떤 의미에서 중세가 다시 도래했습니다. 두 왕이 협약을 했지요, 이 마을은 내 것, 저 마을은 네 것이라고 점령을 했어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자유는 무시하고요. 서구 세계는 우크라이나 민족이 겪고 있는 고통을 덜기 위해 도와주는 한편 안타깝지만 관망도 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지혜를 모아야 할까요?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에 대해 답을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도 의미가 있지요.(웃음)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인류가 고통을 당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소설가입니다. 정치적 문제에 해결책을 찾지 못합니다. 저는 단지 이런 상황의 모순을 소설을 통해 보여줄 뿐입니다.”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 민음사 제공
(https://bit.ly/3JMRNtM)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번역 이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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