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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중세 유럽 서사시의 걸작 ‘롤랑의 노래’

등록 2022-04-01 04:59수정 2022-04-01 14:04

국내 최초 중세 프랑스어 완역
옮긴이의 상세한 해제·각주 돋보여
샤를마뉴 원정 역사적 사실 바탕
문학적 상상력으로 그린 서사시
롤랑 조각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롤랑 조각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롤랑의 노래
김준한 옮김 l 휴머니스트 l 2만2000원

<롤랑의 노래>(La Chanson de Roland)는 프랑스 중세 무훈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이자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프랑스 중세 문학을 대표하는 이 서사시가 김준한 고려대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옮긴이는 <롤랑의 노래>와 프랑스 중세 문학에 관한 논문 30여 편을 쓴 이 분야 전문가다. 국내에서 <롤랑의 노래>는 현대 프랑스어 텍스트 번역본이 나온 경우는 있지만, 중세 프랑스어로 된 고본(12세기 옥스퍼드 필사본)이 완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번역본에는 옮긴이의 상세한 주석과 해제가 달려 있어, 이 서사시를 문학 작품으로서 또 프랑스어 고문헌으로서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롤랑의 노래>는 중세 프랑스 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텍스트이자 중세 프랑스어의 출발을 알리는 텍스트다. 연구자들은 <롤랑의 노래>가 1080년에서 1100년 사이에 지금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본다. <롤랑의 노래>가 작품으로 성립한 시기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프랑스어가 형성되기 한참 전이다. 본디 프랑스어는 이탈리아어·에스파냐어·포르투갈어·카탈루냐어·루마니아어와 함께 라틴어라는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로망어군’에 속한다. 로망어는 로마 제국 시대에 변방이나 속주 지역에서 쓰던 속류 라틴어를 통칭하는 말인데, 이 로망어가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적 특색이 더해져 남서유럽 각국 언어로 분화했다. <롤랑의 노래>에 등장하는 프랑스어는 바로 이 로망어라는 태반에서 프랑스어가 떨어져 나오는 역사적 순간을 보여준다. 고대 로망어와 근대 프랑스어의 중간쯤에 속하는 언어인 셈이다. 단테(1265~1321)의 <신곡>이 로망어 이후 근대 이탈리아어의 원형을 보여주듯이, <롤랑의 노래>는 로망어가 낳은 프랑스어의 첫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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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의 노래> 삽화. 위키미디어 코먼스

눈길을 끄는 것은 <롤랑의 노래>의 바탕을 이루는 실제 사건이 독일과 프랑스의 공통 역사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롤랑의 노래>는 역사적 사실을 날실로 삼고 상상력에서 뽑아낸 허구의 실을 씨실로 삼아 장엄하게 짠 직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역사적 사실이란 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의 샤를마뉴(742~814, 카를 대제)의 에스파냐 원정이다. 샤를마뉴 시대에 프랑크 왕국은 서쪽으로 피레네산맥에서 동쪽으로 엘베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이루었고, 그 공적으로 샤를마뉴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서로마 황제’ 칭호를 얻었다. 이때까지 프랑스와 독일은 프랑크 왕국에 함께 속해 있었다. 그래서 똑같은 왕이 프랑스에서는 샤를마뉴, 독일에서는 카를 대제라고 불린다. 이때 ‘샤를마뉴’(Charlemagne)라는 말은 위대한(magne) 샤를(Charle)이라는 뜻이어서 독일어의 ‘카를 대제’와 의미가 같다.

프랑크 왕국은 9세기 중엽에 샤를마뉴의 손자 세 사람에게 통치권이 나뉘어 넘어간 뒤로 서프랑크(프랑스), 동프랑크(독일), 중프랑크(북이탈리아)로 분할됐고, 이때 프랑스·독일·이탈리아의 초기 국경이 그어졌다. 그러므로 샤를마뉴의 원정을 그린 <롤랑의 노래>는 역사적 사실만 보면 프랑스와 독일의 공통 역사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프랑크 왕국 시기에 프랑크족이 쓰던 게르만어가 3국 분할 이후 동프랑크에만 남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로망어로 흡수됐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서프랑크 언어는 로망어를 거쳐 프랑스어가 됐고, 동프랑크의 게르만어는 독일어로 진화했다. 그러나 샤를마뉴 원정은 아직 언어의 분화가 일어나기 전, 게르만어가 프랑크 왕국의 공통 언어로 쓰이고 있던 때의 일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롤랑의 노래>의 원형을 두고 19세기 이래 논란이 일었다. 먼저 <롤랑의 노래>가 샤를마뉴 원정 직후부터 게르만어로 불리던 노래들이 후에 프랑스어로 엮인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고, 익명의 음유시인이 11세기에 노래 전체를 프랑스어로 창작했다는 주장이 뒤이어 나왔다. 이 ‘11세기 창작설’이 20세기에 민족주의 바람을 타고 더 힘을 얻었다.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 &lt;롱스보의 롤랑&gt;. 위키미디어 코먼스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 <롱스보의 롤랑>. 위키미디어 코먼스

실제 역사를 보면 샤를마뉴가 이슬람이 장악한 에스파냐로 원정을 떠난 것은 778년이다. 이때 피레네산맥 롱스보 협곡에서 샤를마뉴의 후위 부대가 바스크족의 습격을 받아 전멸했다. <롤랑의 노래>에서 주인공 롤랑은 이 후위 부대를 이끄는 기사로 나온다. 노래의 두번째 주인공은 롤랑을 사랑하는 숙부 샤를마뉴다. 또 롤랑의 의붓아버지 가늘롱이 롤랑의 맞은편에서 이 서사시의 악역으로 등장한다. 가늘롱은 샤를마뉴가 롤랑을 총애하는 데 반감을 품고 에스파냐의 이슬람 세력과 결탁해 롤랑을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그 음모의 결과로 롤랑의 부대가 롱스보 협곡에서 몰살당하고 롤랑도 죽음을 맞는다. 뒤늦게 가늘롱의 음모를 알아챈 샤를마뉴는 에스파냐 군대를 대파한 뒤 가늘롱을 처형한다. <롤랑의 노래>는 문학적 상상력이 사실을 압도하는 작품이다. 이를테면 이 작품에서 샤를마뉴는 흰 수염이 난 노인으로 나오지만 실제 샤를마뉴가 에스파냐 원정을 한 건 30대 중반이었다. 또 샤를마뉴는 조카 롤랑의 죽음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하는데, 롤랑이 자신의 누이와 근친상간을 통해 낳은 아들이기 때문임을 텍스트는 알려준다. 그 씻을 수 없는 원죄가 롤랑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기독교 윤리관이 밴 플롯인 셈이다.

롤랑 조각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롤랑 조각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작품은 주인공 롤랑과 친구 올리비에의 우정을 묘사하는 데도 공을 들이는데, 호메로스 <일리아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우정을 떠올리게 한다. 올리비에는 롱스보 전투에서 혈투를 벌이다 롤랑과 함께 전사한다. 이 서사시에서 롤랑과 올리비에의 우정이 절실하게 그려진 뒤로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 창작되기도 했다. <롤랑의 노래>는 잘 짜인 플롯 안에 전투 현장을 피가 튀는 듯 생생하게 묘사한 데 더해 기사들의 영웅적인 말과 행동을 강건한 문체로 그려냄으로써 당대에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고 유사한 작품이 줄을 이었다. <롤랑의 노래>는 중세 프랑스어로 들어가는 관문과도 같은 문헌이자 유럽 서사시 역사에 굵은 매듭을 이루는 작품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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