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보고타국제도서전 현장]
은희경·이문재 등 작품 실린 ‘한국문학 앤솔로지’
‘바람의 책’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에게 무료 배포
이문재 “재회와 공존에 문학의 역할 지대해”
한국 미용·영화에 대한 관심, 책으로도 이어져
은희경·이문재 등 작품 실린 ‘한국문학 앤솔로지’
‘바람의 책’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에게 무료 배포
이문재 “재회와 공존에 문학의 역할 지대해”
한국 미용·영화에 대한 관심, 책으로도 이어져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콜롬비아 사람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이름을 딴 도서관에서 한국 작가들이 콜롬비아의 독자들을 만났다.
콜롬비아 현지시각으로 20일 오전 10시, 한국문학번역원과 보고타시 문화예술국(Idartes)은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하는 ‘2022 보고타국제도서전’ 개최를 계기로 출간하는 ‘한국문학 앤솔로지’(앤솔로지) 출간기념회를 열었다. 마르케스의 이름을 딴 공공도서관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앤솔로지에 스페인어로 번역된 작품이 실린 은희경·이문재 작가가 참석했으며, 보고타 시내 한 학교(Institución educativa Bernardo Jaramillo)에서 온 고등학생 수십명을 비롯한 150여명의 청중이 행사장을 찾아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국제도서전 교류행사의 차원에서 기획된 한국문학 앤솔로지는 모두 2종으로, 보고타시 문화예술국이 제작한 앤솔로지에는 ‘양들의 역사’(김경욱),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은희경), ‘우리들’(정영수), ‘내 여자의 열매’(한강) 등 4편의 단편소설과 ‘끝이 시작되었다’ 등 이문재 작가의 시 5편이 실렸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콜롬비아 작가 안드레스 펠리페 솔라노가 총론을 썼다. 주콜롬비아 한국대사관이 제작한 또다른 앤솔로지에는 단편 ‘가원’(강화길),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최은영)와 장편 <내 심장을 쏴라>(정유정), 동화 <샘마을 몽당깨비>(황선미) 등이 실렸다. 그동안 스페인어로 번역된 한국 작품들이 있긴 하지만, 이번 국제도서전을 계기로 한국 문학이 콜롬비아에 직접 소개된다는 의미가 크다.
또 하나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이 앤솔로지가 여러 공공장소에서 무료로 콜롬비아 시민들을 찾아간다는 점이다. 보고타시 문화예술국이 기획한 앤솔로지는 ‘바람의 책’(libro al viento·books on wind)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으로 제작·배포된다. 2004년부터 시작한 ‘바람의 책’은, ‘책은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이라는 가치에 기반해 공공 재원을 들여 책을 만들고 공공장소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프로그램이다. 시민들은 도서관뿐 아니라 버스 정류장, 병원 대기실 등 다양한 공공장소에서 마음껏 ‘바람의 책’을 접할 수 있다. 이번에 나온 한국문학 앤솔로지를 포함해 여태껏 164권을 펴냈으며, 배포된 전체 권수는 550만부가량 된다. 아드리아나 마르티네즈 보고타시 문화예술국 문학부 팀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민들로 하여금 문학과 책을 만나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보고타국제도서전 주빈국들의 문학작품들을 해마다 ‘바람의 책’으로 제작해왔는데, 아시아권 문학 선집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바람의 책’ 프로그램은 문학의 위상을 공공재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번 앤솔로지 발간은 한국 문학이 콜롬비아 문학의 공공재가 되는 첫 걸음을 내딛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국문학 앤솔로지는 앞으로 5년 동안 5만부를 만들 예정이다.
이날 출간기념회에서 이문재 작가는 이번 국제도서전의 테마인 ‘재회’와 주빈국 주제인 ‘공존’과 관련한 시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문명 비판, 생태주의, 미래와 관련해 제가 붙잡고 있는 화두는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라며,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할, 재회되어야 할 첫 대상은 천지자연이며, 재회와 공존으로 가는 길에 문학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물려받은 것보다 더 좋게 해서 물려주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은희경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인간이 가진 자신의 취약한 조건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연대와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펼쳐온 작품 세계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그 역시 ‘재회’와 ‘공존’이란 테마에 비추어, 앤솔로지에 수록된 작품 ‘우리는 왜 얼마동안 어디에’의 마지막 장면처럼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면서 연대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공존”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본격적으로 열린 국제도서전 한국관에는 한국 문화에 관심을 둔 많은 콜롬비아 시민들이 발걸음을 했다. 보고타시에서 의사로 일한다는 카티(36)는 “피부 관리 등 한국 미용에 관심이 생겨 최근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다양한 한국 책들을 만날 수 있어서 매우 관심 있게 둘러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어본 백무산 시집 표지에 적혀 있는 ‘노동 문학’(literature obrera)이란 말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대학 교수인 알바로 차우스뜨레(60)는 “여태껏 한국 관련 출판물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 행사를 계기로 새로운 문화와 역사를 알아가는 데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영화 <올드보이>를 계기로 5년여 전부터 한국 문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밀드레 이스끼에르도(31)는 정유정·한강·박완서·박민규 작가 등의 책 10여권을 한아름 골라들고, “그동안 한국 관련 책을 구하기 어려웠는데 여기서 많은 책들을 접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보고타/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20일 오전(현지시각) 콜롬비아 보고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공공도서관에서 열린 ‘한국문학 앤솔로지’ 출간기념회에서 이문재(왼쪽)·은희경(왼쪽에서 두번째) 작가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콜롬비아 보고타시 문화예술국과 한국문학번역원이 함께 제작한 ‘한국문학 앤솔로지’ 표지. 이 선집은 ‘바람의 책’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보고타 시민들에게 공공재로 제공된다.
20일 오후(현지시각)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에서 시민들이 주빈국인 한국 관련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
20일 오후(현지시각)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에서 한 가족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전시 공간을 찾아 독서를 즐기고 있다.
20일 오후(현지시각)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에서 시민들이 한국 전통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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