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수 있는 여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l 은행나무(2020)
설문조사 회사에서 일하는 메리언은 여성 일반을 약탈자로 간주하고 결혼을 혐오하는 남자친구 피터와의 관계가 늘 조심스럽다. 메리언의 룸메이트 에인슬리는 전통적인 결혼은 거부하지만, ‘여성성’의 완성을 위해 임신과 출산의 경험을 원하며, 좋은 유전자를 찾아 메리언의 친구 렌을 유혹해 임신할 계획을 세운다. 메리언의 대학 친구 클래라는 재학 중에 결혼해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셋째를 임신 중이다. 정신없이 어질러진 클래라와 조 부부의 집은 결혼이라는 태풍을 직격탄으로 맞은 쑥대밭을 연상시킨다.
어느 날 남자친구 피터가 청혼하면서 메리언의 식이장애가 시작된다. 피터의 청혼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메리언은 막상 결혼이 구체화되자 삼킬 수 없는 음식이 점점 늘어간다. 메리언은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자신이 정상인지 끊임없이 물어보는데, 룸메이트 에인슬리는 “정상적인 거랑 평범한 거는 달라. 세상에 정상적인 사람은 없어”라고, 친구 클래라는 “거의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정상”이라고, 약혼자 피터는 “내 일천한 경험을 근거로 평가하건대 당신은 놀랍도록 정상이야”라고 대답한다. 흥미롭게도, 세상에 정상적인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던 에인슬리는 계획 임신에 성공한 후 아이가 집에서 든든한 아버지상을 주입받지 못하면 ‘정상인’ 기분이 들 수 없고 동성애자로 자랄 게 분명하다는 임산부 교실 강연을 듣고 와서 배 속 아이에게 ‘정상적인 가족’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공포와 압박감에 시달린다.
결혼식이 가까워질수록 메리언의 음식 거부 증상은 점점 심해지고 그에 따라 일탈 행동도 늘어간다. 방문 설문조사 중 만난 영문과 대학원생 덩컨과 다소 기이한 만남을 이어가는데, 그 와중에도 메리언은 유약하고 의존적인 덩컨을 향해 ‘내면의 간호사’를 끄집어내 그를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결혼식 직전 약혼자가 주최한 마지막 파티에서 메리언은 최고조로 치닫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파티장에서 도망치고, 집에 돌아와 케이크를 굽는다. 생생한 여성의 몸 모양을 한 케이크를 완성하고 메리언은 말한다.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여. 너는 결국 먹히게 될 거야. 음식의 운명이 그렇거든.” 메리언은 여자 모양 케이크를 약혼자 피터에게 내민다.
<먹을 수 있는 여자>는 <시녀 이야기>와 <증언들> 등으로 페미니즘 문학의 거장이 된 마거릿 애트우드가 이십대 중반에 완성한 첫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페미니즘 제2 물결이 본격화되기 직전 완성한 이 소설을 페미니즘 문학이 아닌 ‘프로토페미니즘 문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 속에 꼼꼼하게 묘사된 현실은 ― 직장 내 다양한 성차별과 결혼과 출산으로 지워지는 여성의 자의식, 여성을 자신을 돌보는 도우미로 여기거나 성적인 도구로 보거나 여신처럼 떠받드는 남성 군상들 ― 60년 가까이 흐른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한국어 제목 ‘먹을 수 있는 여자’에 기대어 메리언의 식이장애를, 여성이 먹히는 목적어가 아니라 먹는 주어로 기능하고자 소망하는 일종의 결혼 알레르기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