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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문제’라는 손쉬운 대답에만 머물 것인가

등록 2022-04-29 04:59수정 2022-04-29 11:02

[한겨레BOOK]
‘짱깨주의’ 용어로 한국 사회의 혐중정서 분석
샌프란시스코체제로 회귀하려는 보수주의 기획
평화체제 구축 추구하는 진보적 중국 담론 요구
지난 2월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치마저고리를 입고 댕기 머리를 한 여성이 개최국 국기 게양을 위해 중국의 오성홍기를 옮기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지난 2월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치마저고리를 입고 댕기 머리를 한 여성이 개최국 국기 게양을 위해 중국의 오성홍기를 옮기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짱깨주의의 탄생
누구나 함부로 말하는 중국,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국
김희교 지음 l 보리 l 3만3000원

2018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여러 국내 언론들은 “중국에 크리스마스 금지령이 내렸다”고 보도했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를 인용한 이 보도들은 시진핑 주석이 “중국 문명의 위대한 부활을 주장”했던 사실을 끌어들이며, ‘지구촌이 보편적으로 향유하는 문화를 탄압하는 비정상적인 중국’이란 인식을 퍼뜨렸다. 그러나 당시 중국 베이징의 호텔과 쇼핑몰은 거대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각종 행사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사람들을 끌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로에게 사과를 선물하는 중국식 크리스마스 이벤트도 여전히 활발했다. 길거리를 점령해 크리스마스 장식을 판매하려는 노점상을 단속하겠다는 지방 정부의 공문 한 장과 거리에서의 종교 활동을 법으로 금지하는 등 애초 종교 행사에 엄격한 중국 당국의 정책이, 어떤 왜곡된 인식구조를 거치며 ‘미개한 중국’을 상상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허수아비를 때리는 데까지 발전한 것이다.

중미관계사를 연구해온 김희교 광운대 교수는 새로 펴낸 저작 <짱깨주의의 탄생>에서 이를 ‘짱깨주의’라고 규정한다. ‘짱깨주의’는 “신식민주의와 유사인종주의가 결합된 한국의 독특한 중국인식체계”인데, 우리는 이를 흔히 반중정서 또는 혐중정서라 부른다. 굳이 ‘짱깨주의’란 말을 선택한 이유는 이것이 단지 다른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배타적 성향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기획된 이데올로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짱깨주의’의 출현을 밝히기 위해 지은이가 제시하는 틀은 명징하다. 우리가 말하는 “전후체제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을 바탕으로 구축된 ‘샌프란시스코체제’와 1972년 키신저 협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키신저 시스템’의 복합체라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체제를 구축해 중국을 봉쇄하고 동아시아에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심었던 미국은, 1960년대에 맞이한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중국을 전지구적 시장에 끌어들이는 키신저 시스템을 다시 구축했다. 한국의 보수주의 세력이 한동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安美經中)을 주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러나 중국이 급격히 부상하면서 이런 이중체제의 모순이 심화됐고, 2기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아시아 회귀’ 정책을 펴기 시작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에 이르러 노골적인 ‘중국 봉쇄’에 나서는 데 이르렀다. 키신저 시스템의 핵심이었던 ‘단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어 샌프란시스코체제로 귀환하려 하는, 이른바 ‘신냉전 전략’이다.

지난 2월9일 오전 서울 중구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나라지킴이고교연합, 자유수호포럼 주최로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와 인권문제 해결 촉구 등을 주장하는 반중 집회가 열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2월9일 오전 서울 중구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나라지킴이고교연합, 자유수호포럼 주최로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와 인권문제 해결 촉구 등을 주장하는 반중 집회가 열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런 배경으로부터 모든 사안에 대해 ‘중국이 나쁘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짱깨주의’가 출현했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이를 기획하고 추동하는 것은 샌프란시스코체제로의 귀환을 바라는 ‘안보적 보수주의’ 세력이다. 동북공정과 사드 배치를 결정적 계기로 삼아 이들의 기획은 성공적으로 작동했고, 10여년 만에 중국은 한국 사회에서 악마와 다름없는 존재가 됐다. ‘먹튀’ 논란을 부른 론스타는 국적이 중요하지 않지만 중국 자본은 아무리 작아도 ‘중국 자본’이란 딱지가 붙는다. 한국에서 외국인 토지 소유자 중 중국인의 비율은 7.8%로 미국인(52.2%)보다 훨씬 적지만, 언론은 “앞으로 중국인을 집주인으로 모셔야 한다”고 말한다. 집단지배체제라는 특성은 무시된 채 시진핑은 간단히 ‘독재자’로 치부된다.

이렇게 유사인종주의를 동원해 멋대로 그려대는 중국의 모습은 심지어 일관적이지도 않다. 중국은 미국과 전쟁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패권국가(‘투키디데스 함정론’)지만, 미국을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언젠가 붕괴할 운명의 약점투성이 국가이기도 하다. 전후체제 연장을 위해 ‘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지만을 주고, 모든 나쁜 것들로만 종합된 중국을 상상하다 보니 벌어지는 모순이다. 냉정히 들여다볼 때, 동아시아에서도 패권국가는 엄연히 미국이고 중국은 미국의 위협 아래에 자기 살길 찾기에 급급한 국민국가일 뿐이라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이에 맞서 ‘진보적 중국 담론’을 만들지 못한 한국 사회 내 진보 세력을 집중적으로 비판한다. <한겨레> 같은 진보언론에서부터 중국 전문가로 꼽히는 백원담·백영서·이희옥·백승욱 등 지식인들을 실명으로 거론한다. 이들에 대해 주로 문제삼는 것은 “(미국이 문제지만) 중국도 문제다”라는 프레임이다. “한국의 진보적 중국연구자들은 누구나 말하는 중국에 대해 말하고 있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국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홍콩이나 신장 위구르 문제 등에서 자유주의적 보편가치를, 또는 과도할 정도로 이상적인 사회주의적 가치를 중국에 들이대며 ‘중국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데에만 집중할 뿐, 정작 현시점에서 절실한 탈식민주의적 보편주의 관점을 키우는 데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이다. 지은이는 탈식민주의 사상가 월터 미뇰로가 제시한 ‘지식의 지정학’ 개념을 끌어들여, 이 같은 태도는 결국 자유주의 프로젝트와 동일한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진보 진영은 추상적 공간에 서서 ‘중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물을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 한반도에 발을 붙인 채 ‘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샌프란시스코체제가 몰락한 뒤 찾아올 다자주의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탈식민주의적 관점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전망에는 중국의 당-국가체제가 러시아처럼 군사주의적·대외팽창적 국가사회주의의 길을 걷지 않으리라는 낙관이 반영되어 있다. “미국이 주도하여 중국을 봉쇄하는 신냉전 전략이 지속되지 않는 이상 중국의 힘은 외부로 향하기보다는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다수의 국민이 존재하는 내부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평화주의 세력은 이 힘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짱깨주의’ 비판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하겠지만, 이 대목에 대해선 앞으로 더 치열한 논쟁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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