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형법과 사법 개혁 초석
체사레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
볼테르 해설과 함께 출간
재판관의 편견과 무지 탄핵
체사레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
볼테르 해설과 함께 출간
재판관의 편견과 무지 탄핵
![](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50/382/imgdb/original/2022/0512/20220512504027.jpg)
체사레 베카리아 지음, 볼테르 해설, 김용준 옮김 l 이다북스 l 1만5000원 체사레 베카리아(1738~1794)의 <범죄와 형벌>(1764)은 근대 형법의 초석이 된 기념비적 저작으로 꼽힌다. 베카리아는 이 책에서 자의적인 재판, 비인간적인 고문, 가혹하고 잔인한 형벌을 탄핵하고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세움으로써 형사 사법 제도를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로 나누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저작은 18세기에 처음 출간된 직후부터 당대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의 해설문과 함께 읽혔는데,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된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은 볼테르의 그 해설문을 부록으로 실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난 베카리아는 스무 살 때 파비아대학에 들어가 법학을 전공한 뒤 뜻 맞는 지식인들과 모임을 결성해 형사 사법 제도 개혁을 논의했다. 그 논의의 결과물이 26살 때인 1764년에 출간한 <범죄와 형벌>이다. 수학에 재능이 있었던 베카리아는 이 얇은 책을 수학 논문처럼 논리적이고 간결한 형식으로 썼다. 하지만 문장들 사이사이에는 비인간적이고 반지성적인 형벌 제도에 대한 의분과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휴머니즘의 열망이 짙게 배어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범죄와 형벌>을 쓰는 베카리아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이 글을 썼다는 이유로) 온 인류가 나를 경멸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인류의 권리와 불굴의 진리를 지지함으로써 폭정과 무지에 희생되는 피해자 중 단 한 명이라도 죽음의 고통에서 구해낼 수 있다면 내게는 큰 위안이 될 것이다.”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은 유럽 계몽주의 정신 속에서 잉태되고 태어난 계몽의 자식이다. 특히 계몽주의 운동의 대표자 볼테르의 <관용론>과 베카리아 저작 사이에는 직접 탯줄이 이어져 있다. 볼테르의 <관용론>은 1762년 프랑스를 뒤흔든 ‘칼라스 사건’을 고발한 책이다. 프랑스 남부 툴루즈 사람 장 칼라스는 가톨릭교도가 대다수인 곳에서 프로테스탄트교도로 살던 늙은 상인이었다. 어느 날 칼라스의 아들이 목매 자살했는데, 이 사건을 보려고 몰려든 군중 가운데 누군가가 ‘칼라스의 아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하자 가족이 아들을 죽였다’고 소리쳤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소문은 툴루즈 시민 사이에 퍼져나갔고 광신의 물결 속에서 칼라스는 체포됐다. 맹신과 편견으로 무장한 재판관들은 증거도 없이 칼라스에게 극형을 선고했다. 칼라스는 수레바퀴에 매달아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을 당했다. 이 사건을 알게 된 볼테르는 야만적인 재판과 형벌에 분노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글을 써 여론에 호소했다. 사건은 재심에 부쳐졌고 칼라스는 뒤늦게 무죄 판결을 받았다. 볼테르는 1763년 이 사건의 전말을 담은 <관용론>을 출간해 종교 박해를 규탄했고, 볼테르의 필설로 칼라스 사건은 유럽 전역의 관심을 모았다.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은 바로 그 칼라스 사건과 볼테르 저작이 일으킨 파문 가운데서 집필됐으며, 그 주장의 단호함과 논증의 명료함으로 출간 직후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볼테르의 <관용론>이 무지와 맹목으로 물든 종교적 불관용에 각별히 주목했다면, 베카리아의 책은 잔혹한 형벌과 자의적인 재판을 비판의 과녁으로 삼았다. <범죄와 형벌>이 1765년에 프랑스어로 번역되자 이듬해 볼테르는 이 책을 해설하는 글을 펴냈다. 이때부터 볼테르의 해설문이 베카리아의 책과 묶여 함께 읽히기 시작했다. 볼테르와 베카리아가 서로 바통을 넘겨주며 계몽주의 정신을 드높인 셈이다.
![야만적인 재판과 형벌을 탄핵하고 근대 형법의 초석을 세운 이탈리아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 위키미디어 코먼스 야만적인 재판과 형벌을 탄핵하고 근대 형법의 초석을 세운 이탈리아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 위키미디어 코먼스](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00/900/imgdb/original/2022/0512/20220512504026.jpg)
야만적인 재판과 형벌을 탄핵하고 근대 형법의 초석을 세운 이탈리아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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