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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어느 정치 목사의 어지러운 출사표

등록 2022-05-20 05:00수정 2022-05-20 09:56

성자의 전성시대
고광률 지음 l 강 l 1만6000원

제목은 조선작의 1970년대 단편 ‘영자의 전성시대’를 닮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대형 교회 목사다. <성자의 전성시대>는 ‘주만사랑교회’ 담임목사인 ‘신사랑’과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아귀다툼을 통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타락과 부패, 방향 상실을 고발한다. <오래된 뿔> <시일야방성대학> <뻐꾸기, 날다> 같은 선 굵은 작품들을 통해 한국 현대사와 현실 정치, 대학 사회 등을 거침없이 비판해 온 고광률(사진)의 신작이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로 심판하신 이후에 악한 자들을 더 이상 벌하지 않겠다고 하셨고, 악한 강자들은 권력에 도취한 오만으로 말미암아 분열해서 스스로 멸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급을 보면, 하나님의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만 사용해야 하고,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일에는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소설 도입부에서 신사랑 목사의 설교 중에 끼어든 한 청년의 항변이 목사의 행태를 요약해서 제시하는 셈이다. 신사랑 목사는 교회 신도이자 자신의 아들 친구이기도 한 성요한의 아내 ‘매리’를 내연녀로 삼아 중국 칭다오에 숨겨 놓고 있는 한편, 방송 출연을 통해 확보한 인지도를 이용해 설교에서 극우적인 정치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는 조직폭력배 두목을 동업자로 삼아 부동산에 투자하고, 정치인과 정치 교수 등과 어울리며 대권을 향한 행보를 이어간다. 대포폰과 비자금, 교회 거래, 접대, 청부 폭력 등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에서 교회와 신앙의 본질을 찾기란 무망해 보인다.

“정치와 종교도 달라요. 서로 다른 둘이 같은 길을 가면 원시의 시대, 야만의 시대, 혼효의 시대가 되는 겁니다.”

신사랑 목사가 동류인 정치인과 교수 등을 만나 하는 말로, 이 소설의 주제가 담긴 대목이기도 하다. ‘혼효’란 섞이지 말아야 할 이질적인 것들이 한데 섞여 뒤죽박죽이 된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신사랑 목사도 종교와 정치의 결합에 비판적인 셈이지만, 그의 이 말은 실제로는 자신의 더 큰 정치적 야망을 가리기 위한 핑계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은 광야에 나가 성전을 치르겠노라는 정치 목사의 야심과, 그에게 아내를 빼앗긴 요한의 복수극이 두 축을 이루어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소설 말미에서 세종문화회관 중앙 계단에서 정치 선동을 하는 신사랑 목사와 권총으로 그를 겨냥하는 요한의 대치는 뜻밖의 파국으로 이어지며 암담한 결말을 낳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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