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대치동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지점들을 확장하고 있는 수학 학원이 있는데, 초등학생 학부모들에게 이 학원은 최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화학습’을 통해 실력 향상을 책임져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부터 치열해서, 전국 단위 레벨테스트를 치러야 입학이 가능하고 이 레벨테스트를 준비하기 위한 과외까지 성행할 정도라 들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대목은, 이 학원에서는 학생이 질문을 하기 위해선 이전 수업시간에 뭔가를 잘해서 받아 놓은 ‘쿠폰’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모르는 문제가 있거나 궁금한 것이 있어도 쿠폰이 없으면 질문을 할 수가 없다는 거죠. 이런 제도를 만든 취지에 대해 학원 쪽은 “학생들이 본인 힘으로 끝까지 문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더군요.
‘학문’이란 한자어가 단적으로 드러내듯 배움과 물음은 애초부터 하나입니다. 물음이 없는 배움이란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조건부, 그것도 순응을 전제로만 허용된 물음 아래 이뤄지는 가르침과 배움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10여년 전 한 대학생이 ‘대학을 그만둔다’고 선언하며 지적한 바 있는, “자본과 대기업에 ‘인간 제품’을 조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가뜩이나 심란해진 마음 위에, 교육과 학문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에 “교육부의 첫번째 의무는 산업 인재 공급”이라고 주문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먹구름을 잔뜩 드리웁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답이 아니라 질문들이 잔뜩 담긴 책들을 뒤적이며 어떤 또 다른 질문들을 그 뒤에 이어갈지 궁리를 하는 것뿐입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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